초기 삼국의 통치 체제
삼국 초기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5부나 신라의 6부가 중앙의 지배 집단이 되었다.
국가의 중요한 일이나 여러 부의 힘을 통합하여 국가의 동원력을 강화하는 일은 각 부의 귀족으로 구성된 회의체에서 결정하였다.
고구려 – 제가 회의
백제 – 정사암 회의
신라 – 화백 회의
중앙 집권 체제 형성
고구려
10여 관등
‘대대로(또는 막리지)’가 국정을 총괄하는 관직이었다.
백제
6좌평제와 16관등제
‘상좌평’이 국정을 총괄하는 관직이었다.
신라
17관등제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상대등’은 귀족 회의를 주관하면서 왕권을 견제하였다.
골품 제도
신라는 관등제를 골품 제도와 결합하여 운영하였다. 즉, 개인이 승진할 수 있는 관등의 상한을 골품에 따라 정하고, 일정한 관직을 맡을 수 있는 관등의 범위를 한정하였다. 또한 골품 제도는 신라인의 일상 생활까지 규제하는 기준으로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지방 행정 체제
고구려
수도를 5부, 지방을 5부로 정비
백제
수도를 5부, 지방을 5방으로 정비
무령왕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
신라
수도를 6부, 지방을 5주로 정비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관련 문서
- 삼국 통치 체제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삼국 통치 체제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삼국 통치 체제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삼국 시대
- 한국사 이론 전체
- 삼국 시대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