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이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해 온 독립 투쟁의 결실이었다.
38도선 획정
하지만 광복의 감격과 각계각층의 건국 운동이 곧바로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미군과 소련군이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하고, 38도선 이남과 이북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미⋅소의 분할 점령과 함께 우리 민족도 우익과 좌익으로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미⋅소 군정의 실시
38도선 이남(미군정)
1945년 9월, 미군은 서울에 들어와 조선 총독의 항복을 받고 군정청을 설치하여 남한 지역을 직접 통치하였다.
미군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 조선 총독부의 행정 체제를 유지하였다.
미군정의 직접 통치 방침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부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38도선 이북(소군정)
한편, 소련군은 각 지역에 세워진 인민 위원회에 행정권을 이양하여 간접 통치하는 방식을 취하였고,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도록 지원하였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동아출판, 해냄에듀)
관련 문서
- 광복 후 38도선 획정과 군정 실시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광복 후 38도선 획정과 군정 실시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광복 후 38도선 획정과 군정 실시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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