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출]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49번 문제 정답

문제

다음은 2007년도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2급 49번 문제와 정답이다.

 

49. 다음 자료를 토대로 정인홍이 실록 편찬자에 의해 비판받았던 이유를 200자 내외로 쓰시오. [4점]

정인홍은 영남 사람이다. 조식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헛된 이름을 훔쳐 풍헌의 장관에 제수되기까지 하였다. 선조가 만년에 이르러 광해가 혼암하여 대임을 담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자못 후회하는 뜻을 두자, 정인홍이 상소하여 극언하다가 유배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공의가 상당히 그를 허여하였고, 광해는 즉위하는 즉시 소환하여 찬성을 제수하였다.

이언적과 이황은 우리 나라의 대현(大賢)인데도 정인홍은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이들을 배척하였다. 이 때문에 사론(士論)에 죄를 얻고, 이이첨과 깊이 결탁해 서로 추천하여 드디어 정승에 이르고, 이어 원훈(元勳)에 책록되었다. 광해가 생모를 추존하여 종묘에 들였는데, 이는 실로 정인홍이 협찬하여 이룬 것이다. 일찍이 등대(登對)할 때 시문용이라는 사람의 풍수설을 힘써 추천하여 토목 공사를 일으켰다.

계축년에 상차하였는데, 그 말이 몹시 흉패하여 대군(大君)을 가리켜 ‘우리 속의 돼지’라고 하였다. 급기야 폐모론이 일어나자 먼저 폐위하고 난 뒤에 주달하자는 의논을 주창하였다. 그리하여 강상(綱常)이 무너지게 하고 사람의 도리가 막히게 하였으니,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이 이이첨에 못지않다.

<인조실록>

 

 

 

 

 

 

 

 

 

 

참조: 조선 광해군

정답은 “실록의 내용에 의하면 정인홍이 비판받은 이유는 첫째, 스승인 조식의 문무 종사를 추진하면서 이언적과 이황의 학문을 비판하였다는 점, 둘째, 인목대비의 유폐와 영창대군의 살해에 관여하였다는 점, 셋째, 명에 대한 의리를 버리고 후금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점, 넷째, 토목 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하였다는 점 등이다.”이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007년도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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