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건국
대조영
7세기 말,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들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698년).
발해 무왕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동북방의 여러 세력을 복속하고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산둥 지방 공격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하였다(732년).
발해 문왕
외교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면서 당의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하고, 신라와도 상설 교통로를 개설하여 대립 관계를 해소하려 하였다.
상경 천도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옮겼다.
독자 연호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발해 선왕
9세기 전반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남쪽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고, 지방 제도도 정비하였다.
해동성국
이후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발해 멸망
10세기 초에 이르러 부족을 통일한 거란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오고, 발해 내부에서도 귀족들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어 발해의 국력이 크게 쇠퇴하였다.
결국, 거란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926년).
자료: 국사 편찬 위원회
관련 문서
- 발해 정치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발해 정치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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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이론 – 남북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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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