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29.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의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 적들이 성벽 아래에 당도하였다. 우리 군사들이 일제히 총을 쏘니,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탄환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적들은 우리의 매복을 전혀 예상치 못하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탄환에 맞아 쓰러지는 자가 속출하였다. 적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흩어졌다. 양헌수는 즉시 순무영에 승전보를 띄워 보냈다. “오늘 적병이 정족산성을 침범하였으나 우리 군사가 일제히 사격하여 물리쳤습니다. 적들은 사상자를 이끌고 도주하였습니다.” |
①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②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③ 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보은 집회가 열렸다.
④ 병인박해로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⑤ 김홍집이 가지고 온 조선책략이 조선에 유포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이다.
1866년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극동 함대의 로즈 제독을 보내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①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1875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의 발단이 되는 운요호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병인양요 이후에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보은 집회가 열렸다.
병인양요 이후 1892년부터 동학교도들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병인박해로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김홍집이 가지고 온 조선책략이 조선에 유포되었다.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조선책략을 가져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⑤번이다.
|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
1866년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신자를 처형하였다(병인박해).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극동 함대의 로즈 제독을 보내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였다(1866년).
강화도 문수산성에서 한성근 부대가 전투를 벌였고, 삼랑성(정족산성)에서 양헌수 부대가 항전하였다. 조선군의 저항으로 사상자가 생긴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물러났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의궤를 비롯한 각종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였다. |
|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
| 오페르트 도굴 사건 |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조선에 들어와 몇 차례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오페르트는 프랑스 선교사, 미국 자본가의 지원을 받아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하였다(1868년). 하지만 주민들의 저항으로 도굴에 실패하였다. |
|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 |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당시 농촌 사회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외세의 침투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인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청일 상인에 의해 영국산 면직물이 싼값에 들어오면서 면포를 짜서 팔던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이 늘어 곡물 가격이 오르자 일본에 대한 농민들의 반감이 커졌다. 개화 정책으로 늘어난 정부의 재정 지출은 농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졌다 정치⋅사회적 의식이 급성장한 농촌 지식인과 농민의 사회 변혁 욕구도 높아졌다.
이 무렵, 동학의 교세는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 동학의 인간 평등 사상과 사회 개혁 사상은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갈망하는 농민의 요구에 부합되었고, 동학의 포접제 조직은 대규모 농민 세력의 규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동학의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자 지방관들은 동학을 탄압하였고 농민들에게 동학 교도의 누명을 씌워 탄압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동학교도들은 1892년부터 충청도 공주, 전라도 삼례, 한성 등에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동학교도들은 전라도 삼례에서 집회를 가지고, 동학에 대한 박해를 중지할 것과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
동학의 지도급 인사 40여 명이 경복궁 앞에서 상소를 하였다.
충청도 보은에서는 동학 교도와 농민 2만여 명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 탐관 오리의 숙청, 일본과 서양 세력의 축출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다가, 마침내 동학 중심의 종교 운동을 농민 중심의 정치 운동으로 전환시켜 갔다.
농촌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횡포와 착취를 저지르며 농민들을 수탈했다. 농민들은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여 봉기하였다. 전봉준 등은 사발통문을 돌려 세력을 모았다.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풀어 주고, 창고의 곡식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를 허물었다. 이에 정부가 새로운 군수를 임명하자 농민들은 군수의 다짐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였다.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봉기에 참여한 농민들을 동학교도라는 죄목으로 잡아들이고 탄압하자 농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세졌다. 전봉준은 손화중과 함께 전라도 각지에서 농민군을 모아 무장에서 대규모로 봉기하였다.
이들은 고부를 점령하고 나서 백산에서 농민군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라는 뜻의 제폭구민(除暴救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히 한다’라는 뜻의 보국안민(輔國安民) 등의 구호를 담은 격문을 전국에 보내 백성의 동참을 호소하였고, 4대 강령을 발표했다.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이 틈을 이용하여 일본은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농민군은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정부와 화약을 맺었다. 이를 전주 화약이라고 한다.
농민군은 정부에 폐정 개혁 12개조를 건의하고,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개혁을 실천해 나갔다.
청이 조선에 파병하게 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내어 마침내 청⋅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조선 정부는 청⋅일 양국에 철병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 간섭을 하였다(군국기무처 설치).
전쟁에서 패한 청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1895년). 청은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의 랴오둥반도 점유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일본을 압박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청에게 할양 받은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는 대신 보상금을 받았다.
일본군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내정 간섭하자, 농민군은 다시 봉기하여 외세를 몰아 내기 위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남접 농민군과 북접 농민군은 논산에 집결하였다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렀다. 결국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동학 농민 운동은 농민층이 봉건적 지배 체제에 반대하여 노비 문서의 소각, 토지의 평균 분작 등 개혁 정치를 요구하고, 외세의 침략을 자주적으로 물리치려 했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반봉건적, 반침략적 민족 운동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갑오개혁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 |
|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을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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