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5번 기출 해설

문제

15. 밑줄 그은 ‘인물’이 활동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초상화로 보는 한국사
이 그림은 소수 서원에 봉안되어 있는 인물의 초상화이다. 그는 충렬왕 때 원에 갔다가 주희의 저서를 들여오면서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다.

그림의 상단에는 유학 진흥에 힘쓴 공을 인정하여 충숙왕이 그의 초상화를 문묘에 모시게 하였다는 발문이 있다.

① 제왕운기를 읽고 있는 왕

② 만동묘 복구를 건의하는 유생

③ 동몽선습을 공부하는 서당 학동

④ 독서삼품과 시행을 준비하는 관리

⑤ 주자소에서 계미자를 주조하는 장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충렬왕 때 성리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안향이다.

 

① 제왕운기를 읽고 있는 왕

제왕운기는 고려 후기 이승휴가 편찬한 역사서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만동묘 복구를 건의하는 유생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때 만동묘도 철폐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동몽선습을 공부하는 서당 학동

조선 시대 박세무가 아동용 유학 교재엔 <동몽선습>을 편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독서삼품과 시행을 준비하는 관리

독서삼품과는 신라 원성왕 때 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주자소에서 계미자를 주조하는 장인

조선 태종 때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고려
성리학의 전래
  •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충렬왕안향이었다.
  • 이제현은 원에 설립된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 공민왕 때 이색은 정몽주, 권근, 정도전 등을 가르쳐 성리학을 더욱 확산시켰다.
  • 성리학을 수용한 사람은 대부분 신진 사대부였다. 이들은 유교적인 생활 관습을 시행하고자 소학과 주자가례를 중시하고, 권문세족과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고려
역사서 편찬
  • 7대 실록(1034년) –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을 편찬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을 현종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덕종 때 완성하였다.
  • 삼국사기(1145년) –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계승 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 해동고승전(1215년) –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은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 동명왕편(1193년) –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 삼국유사(1281년) – 충렬왕 때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는 등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 제왕운기(1287년) –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내었다.
  • 사략(1357년) –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하였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 안동 김씨 축출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 비변사 기능 축소·폐지 –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 의정부와 삼군부 –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하여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 경복궁 중건 –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 원납전 –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 당백전 –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 서원 철폐 –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 호포제 –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 사창제 –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조선 전기
윤리·의례서와
법전의 편찬
윤리·의례서

  • 삼강행실도 – 세종 때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 국조오례의 – 성종 때에 국가의 여러 행사에 필요한 의례를 정비하여 의례서인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였다.
  • 16세기에는 사림이 소학과 주자가례의 보급과 실천에 힘쓰면서 이륜행실도와 동몽수지 등을 간행하여 보급하였다.
  • 동몽선습 – 박세무가 아동용 유학 교재엔 <동몽선습>을 편찬하였다.

 

법전

  • 건국 초기에 정도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편찬하였고, 조준은 경제육전을 편찬하였다.
  • 경국대전 – 세조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한 경국대전이 성종 때 완성되었다.
신라
원성왕
  •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는 독서삼품과를 마련
조선 태종 왕자의 난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개국 공신 세력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 6조 직계제 – 태종은 도평의사사를 없애고 의정부를 두면서 그 정치적 권한을 약화시키고, 6조 직계제를 채택하였다.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안을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제도)
  • 사간원 독립 – 언론 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다.
  • 사병 철폐 – 사병을 없애 왕이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친위 군사를 늘렸다.
  • 조선 8도 – 태종 13년에 전국을 8도(道)로 나누었다.
  • 양전 사업 – 태종은 양전 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 호패법 – 호패법을 실시하여 전국의 인구 동태를 파악하였으며, 이를 조세 징수와 군역부과에 활용하였다.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했다. 거주지와 이름을 적었다.

호패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태종 때에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 계미자 – 태종 때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 신문고 –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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