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42.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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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흥사단을 창립함.
②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
③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함.
④ 한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함.
⑤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 혁명당을 결성함.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에 해당하는 독립운동가는 조소앙이다.
1917년 조소앙, 신규식 등이 국민 주권론과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1935년 중국 난징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의 연결선상에서 민족 혁명당이 결성되었다.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이 참여하였다.
1941년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① 흥사단을 창립함.
1913년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
안중근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함.
박은식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한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함.
지청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 혁명당을 결성함.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윤봉길 의거 이후 큰 활력을 얻었다. 그러나 더 강화된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야만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차례 이동을 거듭한 끝에 충칭에 정착하였다.
1940년 김구의 한국 국민당, 조소앙의 한국 독립당, 지청천의 조선 혁명당 3당은 한국 독립당을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임시 정부는 중국 충칭에 정착하여,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임시 정부는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1941년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에는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정 수립, 토지와 대기업 국유화, 의무 교육 제도 시행, 노동권 보장 등이 내용은 담았다.
1942년 화북 지방으로 이동하지 않은 조선 민족 전선 연맹(민족 혁명당 후신)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화북 지방으로 이동한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42년 중국 화북 지역에서 김두봉이 주도하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국내에서도 건국 준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일제의 패망을 확신한 여운형은 독립 선언서를 준비하고, 무장 세력도 조직하면서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조선 건국 동맹은 일제 타도를 위한 대동단결, 민주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카이로 회담에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참석하였다. 3국 대표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초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된 것이다.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얄타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독일 포츠담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카이로 선언에서 결정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다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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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국외 민족 운동 |
국권 피탈 이후 서간도로 이주한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이상룡 등은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에 신한민촌을 건설하였고, 이곳에서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지치 기관인 경학사는 부민단, 한족회로 발전하면서 서로 군정서를 조직하였다. 신흥 강습소는 군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이후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였다.
북간도로 이주한 동포들은 용정촌, 명동촌 등 한인 집단촌을 형성하고 간민회 등의 자치 단체를 만들어 동포 사회를 이끌었다. 이상설, 김약연 등은 각각 서전서숙과 명동 학교 등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대종교는 북간도로 거점을 옮겼고, 서일 등 신자 중 일부가 무장 독립 단체인 중광단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3·1 운동 이후 북로 군정서로 개편하였다.
이상설, 이승희 등은 북만주 밀산부에 독립운동 기지인 한흥동을 건설하였다.
연해주로 이주한 동포들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이 만들어졌고, 자치 단체인 권업회가 조직되어 한인들의 권익 신장에 힘썼다. 권업회는 권업신문을 발행하였다. 1914년 이상설과 이동휘를 정·부통령으로 하는 대한 광복군 정부가 조직되었다. 이외 한인 단체인 전로 한족회 중앙 총회가 결성되었고, 이동휘 등이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 사회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동제사(1912년), 박달 학원(1913년) 등이 조직되었다. 1912년 7월 신규식과 박은식 등은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동제사는 장차 전개될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교육을 중시했고, 중국의 각종 군사교육기관을 통해 100여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15년 베이징에서는 신규식, 박은식 등이 신한 혁명당을 조직하였다. 1917년에는 신규식, 조소앙 등이 국민 주권론과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8년 <한국 독립에 관한 진정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한국인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미주 지역에 한인 동포 사회가 형성되었다. 1908년에 장인환과 전명운이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건을 계기로 1910년 안창호 등이 대한인 국민회가 결성하였다. 대한인 국민회는 신한민보를 발행하였다. 1913년에는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914년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하여 군사 훈련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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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만주사변(1931년)을 일으키고,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수립한 이후 만주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이 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립군은 보다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에 독립군은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항일 의식이 고조된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함으로써 이 난국을 타개하려 하였다.
조선 혁명군과 한국 독립군은 각각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 전쟁을 전개하였다.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 독립군이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에 승리했다. 지청천을 비롯한 한국 독립군의 일부는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고, 한국광복군을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이후 만주 일대에서 무장 투쟁이 어려워지자,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다. 1935년 중국 난징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의 연결선상에서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이 민족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민족 혁명당 결성에는 김구를 제외한 한국 독립당, 의열단, 신한독립당, 조선 혁명당, 대한독립당 등이 참여하였다.
1935년 민족 혁명당에 합류하지 않은 김구는 한국 국민당을 결성했다.
의열단의 김원봉의 전권 장악에 반발한 한국 독립당계(조소앙)와 신한 독립당계(지청천 또는 이청천)가 탈퇴한 후, 민족 혁명당은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편됐다. 탈퇴한 조소앙은 한국 독립당을 재건했다. 탈퇴한 지청천(또는 이청천)은 조선 혁명당을 재건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 민족 혁명당은 다른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였다.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아래 중국 관내 최초의 한국인 무장 부대인 조선 의용대가 김원봉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조선 의용대는 일본군의 정보 수집, 포로 신문, 후방 교란, 심리전 등을 수행하였다.
조선 의용대는 항일 투쟁에 대한 노선이 나뉘어져 분화되었다.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원하는 조선 의용대 대원들은 중국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여,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결성했다.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김원봉을 포함한 조선 의용대 본대 잔류 인원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있는 충칭으로 이동하여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만주 지역 곳곳에 만들어진 항일 유격대를 통합하여 동북 인민 혁명군을 조직하였다(1933년).
이후 동북 인민 혁명군은 사상에 관계없이 모든 반일 세력을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동북 항일 연군으로 확대·개편되었다(1936년).
동북 항일 연군 내의 한 부대로 편성된 한인 유격대는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까지 포함하여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였다(1936년). 1937년 이들은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 아래 함경도 보천보의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보천보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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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국외 민족 운동 |
국권 피탈 이후 서간도로 이주한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이상룡 등은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에 신한민촌을 건설하였고, 이곳에서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지치 기관인 경학사는 부민단, 한족회로 발전하면서 서로 군정서를 조직하였다. 신흥 강습소는 군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이후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였다.
북간도로 이주한 동포들은 용정촌, 명동촌 등 한인 집단촌을 형성하고 간민회 등의 자치 단체를 만들어 동포 사회를 이끌었다. 이상설, 김약연 등은 각각 서전서숙과 명동 학교 등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대종교는 북간도로 거점을 옮겼고, 서일 등 신자 중 일부가 무장 독립 단체인 중광단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3·1 운동 이후 북로 군정서로 개편하였다.
이상설, 이승희 등은 북만주 밀산부에 독립운동 기지인 한흥동을 건설하였다.
연해주로 이주한 동포들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이 만들어졌고, 자치 단체인 권업회가 조직되어 한인들의 권익 신장에 힘썼다. 권업회는 권업신문을 발행하였다. 1914년 이상설과 이동휘를 정·부통령으로 하는 대한 광복군 정부가 조직되었다. 이외 한인 단체인 전로 한족회 중앙 총회가 결성되었고, 이동휘 등이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 사회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동제사(1912년), 박달 학원(1913년) 등이 조직되었다. 1912년 7월 신규식과 박은식 등은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동제사는 장차 전개될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교육을 중시했고, 중국의 각종 군사교육기관을 통해 100여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15년 베이징에서는 신규식, 박은식 등이 신한 혁명당을 조직하였다. 1917년에는 신규식, 조소앙 등이 국민 주권론과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8년 <한국 독립에 관한 진정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한국인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미주 지역에 한인 동포 사회가 형성되었다. 1908년에 장인환과 전명운이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건을 계기로 1910년 안창호 등이 대한인 국민회가 결성하였다. 대한인 국민회는 신한민보를 발행하였다. 1913년에는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914년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하여 군사 훈련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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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의병 운동 |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유인석, 이소응, 허위 등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이 주도하였다. 이소응 부대는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유인석 부대는 제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단발령을 취소하고 의병의 해산을 권유하자, 의병들은 대부분 활동을 중단하였다.
을미의병의 활동 후, 1900년을 즈음하여 해산된 농민들의 일부가 활빈당을 조직하여 반봉건⋅반침략 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활빈당은 양반·부호, 관청, 장시 등을 습격하여 무기와 재물을 약탈하고, 그 중에서 일부를 빈민에게 분배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과 행상, 유민, 노동자, 걸인 등으로 조직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규모의 의병 부대가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민종식, 최익현 등 양반 출신 의병장을 비롯하여, 평민 출신 의병장인 신돌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의병장으로 국내외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있던 안중근은,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표와 회담하기 위하여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그를 사살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1909년).
이재명은 을사 5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혔다.
고종 황제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민영환은 동포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실어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였으며, 조약 체결에 앞장선 친일 대신들을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나철, 오기호 등은 5적 암살단을 조직하여 을사 5적의 집을 불사르고 일진회를 습격하는 등 매국노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908년 전명운, 장인환이 일본의 한국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미국인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 운동은 그 규모와 성격면에서 의병 전쟁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 때의 의병을 정미의병이라고 한다. 시위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무기를 갖추어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정미의병 이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을 편성하였다. 이 때, 의병은 서울 주재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의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발송하여, 스스로 독립군임을 내세웠다. 그 중 300명의 선발대는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으나, 일본군의 선제 공격을 받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던 의병 투쟁은 그 후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을 계기로 크게 위축되었다. 일부 의병 부대는 국권을 빼앗긴 후에 만주나 연해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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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거나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사관을 앞세워 한국사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부정하였다.
1925년 조선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주의 사관을 토대로 조선사를 편찬하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의 발전 주체가 우리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학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힘을 기울였다.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다. 또한 그는 민족 정신을 혼(魂)으로 파악하여, 혼이 담겨 있는 민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를 지어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다. 또한 독사신론을 저술하였다. 신채호는 낭가 사상을 강조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민족주의 사학은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으로 계승되었고, 이들은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인보는 ‘얼’ 사상을 강조하였다. 문일평은 ‘조선심’을 강조했다. 다산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아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실증 사학자들은 문헌 고증으로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역사가의 주관적인 판단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이병도 등은 1934년 진단 학회를 조직하고 진단 학보를 발간하였다.
1930년대에는 백남운 등에 의해 사회 경제 사학이 대두되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였다.
손진태는 조선민족사개론을 저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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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5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6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7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8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9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0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1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2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3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4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5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6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7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8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9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0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1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2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3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4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5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6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7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8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9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0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1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2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3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4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5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6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7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8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9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0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1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2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3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4번 기출 해설
- 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5번 기출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