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4번 기출 해설

문제

44.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원산 총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

② 국채 보상 운동에 성금을 내는 상인

③ 원각사에서 연극 은세계를 공연하는 배우

④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국민학교 학생

⑤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이 시기는 일제 민족 말살 통치 시기에 해당한다.

 

① 원산 총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

원산 총파업은 1929년 일제 문화 통치 시기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국채 보상 운동에 성금을 내는 상인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원각사에서 연극 은세계를 공연하는 배우

원각사는 1908년에 재개관되어 1914년에 소실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국민학교 학생

일제는 민족 말살 통치 시기 황국 신민화 정책의 하나로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

일제 문화 통치 시기인 1923년 조선 형평사가 창립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 1937년(중일전쟁) ~ 1945년

 

  • 배경

192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노동력과 자원은 일제에게 보다 철저히 수탈당하였다.

그 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만주사변), 더 나아가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는 식민 정책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탄압하였고, 모든 방면에 걸쳐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 병참 기지화 정책
    • 조선 공업화 정책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 남면 북양 정책

일제는 일본에 필요한 공업 제품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면화의 재배와 면양의 사육을 시도하는, 이른바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였다.

 

  • 국가 총동원법(1938년)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 황국 신민화 정책

일제는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1941년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 제3차 조선 교육령(1938년)

일제는 제3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선택 과목)하여,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 제4차 조선 교육령(1943년)

일제는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 언론 폐간

1940년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을 폐간하였다.

 

  • 일상생활·사상 통제

1930년대부터 일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사상까지 통제하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중일전쟁 후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침략 전쟁에서 한국인의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조선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의 가장 하부에는 애국반을 조직하였고, 반상회를 통해 일본어 사용, 전쟁을 위한 애국 저금 등의 정책을 홍보하였다.

1940년 초 일제가 강점기 막바지에 여성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몸뻬를 고안해 냈다.

1936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은 <치안 유지법> 위반자 중 집행 유예, 형 집행 종료 또는 가출옥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 보호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1941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이에 더 나아가서 <치안 유지법>을 위반하여 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는 자를 그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검경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자의적으로 계속하여 구금하거나 일정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반인권적 조치였다.

노동 운동
  • 배경

1920년대에는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에 따라 산업 노동자 수가 점차 늘어났다. 동시에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힘겨운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임금은 대부분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일본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한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민족 차별 등은 노동자의 계급 의식과 민족 의식을 불러일으켜 노동 운동을 벌이는 배경이 되었다.

 

  • 1920년대 노동 운동

1920년대에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은 지역별 직업별로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 단체에 참여하여 노동 조건과 민족 간 차별 대우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1924년에는 조선 노농 총동맹이 만들어졌다

 

  • 조선 노동 총동맹

1927년 조선 노농 총동맹이 조선 농민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분리되었고, 조선 노동 총동맹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각 지방의 노동 쟁의를 이끌면서 노동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 원산 총파업

1929년 원산 라이징 선 석유회사에서 원산 노동 연합회 주도로 4개월간의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파업은 전국적으로 지지와 성원을 받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자도 격려 전문을 보내와 국제적 연대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 1930년대 노동 운동

일제는 1930년대에 대륙 침략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군수 공업 시설을 확충하고, 지하 자원을 약탈하였으며, 노동력을 동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일제는 한국 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인하하고, 노동 시간을 연장하였으며, 각종 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하였다.

1930년대 노동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노동 운동은 반제국주의 항일 운동의 성격을 보였다.

국채 보상 운동

  • 배경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그들의 식민지 시설을 갖추기 위하여 시설 개선 등의 명목을 내세워 우리 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들여 오게 하였는데, 1907년까지 들여 온 차관 총액은 대한 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1300만 원에 달하였다.

일제의 차관 제공에 의한 경제적 예속화 정책에 저항하여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다.

 

  • 국채 보상 운동
    • 전개

1907년 서상돈, 김광제의 제안으로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국채 보상 기성회가 조직되었으며,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금연과 금주로 모은 돈과 반지, 비녀 등을 성금으로 냈으며, 여러 단체와 대한 매일 신보 등의 언론 기관도 모금 운동에 앞장섰다.

 

    • 결과

일제 통감부의 탄압으로 인해 국채 보상 운동은 좌절되고 말았다.

근대
문예와 종교
  • 문예

최남선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되었다.

    • 소설

순 한글을 사용하여 언문 일치의 문장으로 쓰여진 신소설이 등장하였다.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인직의 혈의 누, 이해조의 자유종 등이 있다.

    • 연극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졌고, 은세계, 치악산 등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 종교
    • 개신교

개신교는 1880년대에 서양 선교사의 입국을 계기로 교세를 넓혀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프랑스와의 수교로 포교의 자유를 인정받은 이후 소학교, 고아원, 양로원 등을 세웠으며, 경향신문을 발행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한용운이 조선 불교 유신론을 내세우며 불교의 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주장하였다.

    • 유교

유교에서는 박은식이 유교 구신론을 제창하면서 근대 교육과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 대종교

나철, 오기호 등은 단군 신앙을 발전시켜 대종교를 창시하였다.

    • 천도교

대한 제국 시기에 이용구 등 친일파가 일진회를 조직하고 동학 조직을 흡수하려 하자,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동학의 정통을 계승하여 민족 종교로 발전시켰다.

천도교는 만세보라는 민족 신문을 발간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도 하였다.

형평 운동

  • 배경

갑오개혁 때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으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차별하였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

 

  • 조선 형평사 창립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더 나아가 조선 형평사는 다른 분야의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면서 파업, 소작 쟁의 등에 참가하는 등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구호

공평은 사회의 근본,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자!

 

  • 기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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