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6번 기출 해설

문제

46.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②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③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④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⑤ 민족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둔 독사신론을 발표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여운형에 대한 설명이다.

여운형은 광복 후 엔도 정무총감과의 회담에서 사회 안정에 관한 요구 사항을 관철하고, 좌우 합작 운동을 주도했다. 1947년에 한지근에 의해 암살당했다.

 

①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이승만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이승만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민족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둔 독사신론을 발표하였다.

신채호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여운형
  •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
  •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 조직
  • 1945년 광복 후 엔도 정무총감과의 회담에서 사회 안정에 관한 요구 사항을 관철
  •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
  • 1946년 좌우 합작 운동을 주도
  • 1947년에 한지근에 의해 암살당함
좌우 합작 운동
  • 배경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 좌우 합작 운동(1946년)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미군정도 한국인의 지지를 얻고 소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좌우 합작 위원회를 지원하였다.

 

  • 좌우 합작 7원칙

좌우 합작 위원회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벌 등에 대한 좌우익의 의견을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미 군정은 이 원칙을 근거로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좌우 합작 7원칙 중 신탁 통치, 토지 개혁, 친일파 처벌 문제 등에서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충돌하였다.

 

  • 여운형 암살

그러다 여운형이 한치근에 의해 암살되면서 좌우 합작 운동은 중단되었다.

건국 준비와
한국 독립의 약속

  •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윤봉길 의거 이후 큰 활력을 얻었다. 그러나 더 강화된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야만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차례 이동을 거듭한 끝에 충칭에 정착하였다.

 

  • 한국 독립당 재창당

1940년 김구의 한국 국민당, 조소앙의 한국 독립당, 지청천의 조선 혁명당 3당은 한국 독립당을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 한국광복군과 김구 주석

1940년 임시 정부는 중국 충칭에 정착하여,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임시 정부는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김구 주석

 

  • 건국 강령 제정

1941년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에는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정 수립, 토지와 대기업 국유화, 의무 교육 제도 시행, 노동권 보장 등이 내용은 담았다.

 

  • 조선 의용대 합류

1942년 화북 지방으로 이동하지 않은 조선 민족 전선 연맹(민족 혁명당 후신)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 대일 선전 포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개헌 변천과정
구분 연도 정부 형태
제1차 개정헌법 1919년 대통령중심제
제2차 개정헌법 1925년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
제3차 개정헌법 1927년 국무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제4차 개정헌법 1940년 주석 중심의 단일지도체제
제5차 개정헌법 1944년 주석·부주석 체제

 

  • 조선 독립 동맹

화북 지방으로 이동한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42년 중국 화북 지역에서 김두봉이 주도하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 조선 건국 동맹

국내에서도 건국 준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일제의 패망을 확신한 여운형은 독립 선언서를 준비하고, 무장 세력도 조직하면서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조선 건국 동맹은 일제 타도를 위한 대동단결, 민주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 국제 사회의 한국 독립 약속
    • 카이로 선언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카이로 회담에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참석하였다.

3국 대표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초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된 것이다.

 

    • 얄타 회담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얄타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 포츠담 선언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독일 포츠담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카이로 선언에서 결정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다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 각지의 임시 정부

3⋅1 운동 후 독립 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지도부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지역에서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연해주에서는 대한 국민 의회가 조직되었다. 대통령 손병희, 국무총리 이승만 선임.

서울에서는 13도 대표가 모여 한성 정부가 수립되었다. 집정관 총재 이승만, 국무 총리 이동휘 선임.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 의정원 구성, 국무총리 이승만 선임.

대한 국민 회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1919. 03.)
  • 대통령: 손병희
  • 부통령: 박영효
  • 국무총리: 이승만
한성 정부
(경성, 서울)
(1919. 04.)
  • 집정관 총제: 이승만
  • 국무총리 총재: 이동휘
상하이 임시 정부
(중국 상하이)
(1919. 04)
  • 국무총리: 이승만
  • 내무총장: 안창호
  • 군무총장: 이동휘

 

  • 임시 정부 통합

정부 통합 운동은 민족 지도자들에 의하여 성사되었다.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 정부를 계승하고, 대한 국민 의회를 흡수하여 상하이에 통합 정부인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1919년 9월).

대한 민국 임시 정부는 각지의 임시 정부를 통합한 후, 민주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헌법을 갖추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추대하였다.

헌정 체제를 입법 기관인 임시 의정원, 사법 기관인 법원, 행정 기관인 국무원으로 구성하여, 우리 나라 최초의 3권 분립에 입각한 민주 공화제 정부로 출범하였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
    • 비밀 행정 조직망

임시 정부의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은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 조직망이었다.

연통제는 임시 정부의 지방 행정 기관으로 국내의 각 도, 군, 면에 독판, 군감, 면감을 두어 정부 문서와 명령 전달, 군자금의 송부, 정보 보고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교통국은 통신 기관으로 정보의 수집, 분석, 교환, 연락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 독립운동 자금 마련

임시 정부 활동에는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이 필요하였다. 임시 정부는 이 자금을 독립 공채의 발행이나 국민의 의연금으로 마련하였다.

국내외에서 수합된 자금은 연통제나 교통국의 조직망에 의해 임시 정부에 전달되었으며, 또 만주의 이륭 양행이나 부산의 백산 상회를 통하여 전달되기도 하였다.

 

    • 외교

임시 정부는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을 주장하였다.

또한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이승만을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여 한국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 군사

임시 정부는 정부 조직에 군무부를 설치하여 군사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군무부 아래에는 광복군 사령부와 광복군 총영 등을 두었으며, 이후 육군 주만 참의부를 편성하여 무장 투쟁을 펼쳤다.

 

    • 기타

임시 정부는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간행하여 배포하였으며, 사료 편찬소를 두어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 국민 대표 회의(1923년)
    • 배경

1920년대 초 일제의 탄압으로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이 발각되어 자금 사정은 어려워졌다.

또한 임시 정부 내에서 독립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외교 활동은 강대국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이 발생하였다.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청원 사건

1919년 파리 강화 회의가 개최되자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한국을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 아래 둘 것을 제안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 소집 요구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을 계기로 신채호, 박용만 등의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임시 정부의 개편을 요구하였다.

이어 여러 민족 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민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 결과
창조파 개조파 현상 유지파
인물 박용만, 신채호, 김규식 안창호, 이동휘, 여운형 김구, 이동녕
주장 임시 정부 해체,

임시 정부 대체할 새로운 조직,

상하이 이외 지역으로 임시 정부 이전

임시 정부 개선·보완,

실력 양성 우선,

임시 정부를 민족 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 개조

현상 유지

국민 대표 회의는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창조파와 임시 정부의 조직만 바꾸자는 개조파의 대립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국민 대표 회의가 결렬되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임시 정부를 떠났다.

 

    • 임시 정부의 재정비

1925년 임시 의정원에서는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제2대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곧이어 헌법을 고쳐 대통령제를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바꾸고 일종의 집단 지도 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이동녕과 김구 등을 중심으로 체제를 재정비해 나갔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개헌 변천과정
구분 연도 정부 형태
제1차 개정헌법 1919년 대통령중심제
제2차 개정헌법 1925년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
제3차 개정헌법 1927년 국무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제4차 개정헌법 1940년 주석 중심의 단일지도체제
제5차 개정헌법 1944년 주석·부주석 체제
이승만의
정읍 발언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된 후,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은 정읍에서 공개적으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정읍 발언‘이라고 한다.

한국 민주당은 이 주장을 지지하였다.

일제의
국권 피탈
  • 제1차 영·일 동맹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제1차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 러시아의 용암포 점령

이후, 러시아가 압록강에 위치한 용암포를 강제로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 전시 국외 중립 선언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자 대한 제국은 ‘전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 러·일 전쟁 발발(1904년 2월)

인천항과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 한⋅일 의정서(1904년 2월)

러·일 전쟁 발생 직후, 일본은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일본군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일본의 동의 없이 제3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일 의정서를 강요하였다.

 

  • 제1차 한·일 협약(1904년 8월)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였다. 여기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 제2차 영·일 동맹(1905년 8월)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은 후,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

일본이 뤼순항을 함락하고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는 등 전쟁의 승기를 잡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제2조

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이 한국에 대해 정치와 군사 및 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관리, 감독,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또한 한국에 있는 러시아 제국 신민은 다른 외국인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러시아는 한국 영토의 안전을 위하여 일본이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동의한다.

 

  • 제2차 한·일 협약(을사늑약, 1905년 11월)

일본은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을사늑약으로 일본은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 나라 내정 전반에 걸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의 강제 퇴위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1907년 7월)

이어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였으며,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실질적으로 한국을 지배하였다.

협약 내용

제1조 한국정부는 시정개선에 관해 통감의 지도를 받는다.

제2조 한국정부는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친다.

제3조 한국의 사법사무는 보통 행정사무와 구별한다.

제4조 한국 고등관리의 임면은 통감의 동의를 얻어 행한다.

제5조 한국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한다.

제6조 한국정부는 통감의 동의없이 외국인을 용빙할 수 없다.

 

  • 기유각서

일본은 1909년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사법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찰권을 빼앗았다.

 

  • 한⋅일 병합 조약(경술국치, 1910년 8월)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통감으로 왔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총독이 되었다.

근대
국학 연구
  • 국문 연구소

1907년에는 국문 연구소가 만들어져 주시경, 지석영 등의 주도로 국문의 정리, 문법과 국어의 이해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 역사
    • 신채호 <독사신론>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하여 민족주의 사학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집필하였다.

 

    • 전기 저술

신채호, 박은식 등 계몽 사학자들은 을지문덕전, 강감찬전, 이순신전 등 전기를 저술하였다.

 

    • 세계사 편찬

세계사에 관한 책들도 편찬되었다.

미국 독립사, 월남 망국사, 이태리 건국 삼걸전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외국의 간섭에서 독립을 하거나 나라를 발전시킨 경우, 또는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은 경우를 소개하여 스스로 교훈을 얻으려 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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