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9번 기출 해설

문제

9.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 (가)이/가 나주의 상황을 근심하여 드디어 왕건에게 가서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품계는 한찬(韓粲)으로 올리고 해군 대장군으로 삼았다.
  • (가)은/는 백성을 한낱 지푸라기처럼 여기고 오직 자기의 욕심만을 따랐다. 그리고 참위설을 믿어 갑자기 송악을 버리고 부양(斧壤)*으로 돌아가 궁궐을 세우니, 백성은 공사에 시달려 농사철을 빼앗겼다.

*부양(斧壤): 현재 철원의 북부

①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하였다.

② 광평성 등의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③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④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였다.

⑤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 (가)이/가 나주의 상황을 근심하여 드디어 왕건에게 가서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품계는 한찬(韓粲)으로 올리고 해군 대장군으로 삼았다.
  • (가)은/는 백성을 한낱 지푸라기처럼 여기고 오직 자기의 욕심만을 따랐다. 그리고 참위설을 믿어 갑자기 송악을 버리고 부양(斧壤)*으로 돌아가 궁궐을 세우니, 백성은 공사에 시달려 농사철을 빼앗겼다.

*부양(斧壤): 현재 철원의 북부

위 자료의 (가)에 들어갈 인물은 ‘궁예’이다.

 

①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하였다.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한 인물은 신라 문무왕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광평성 등의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궁예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고려의 서희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다.

후백제 견훤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5년, 후백제 내분 후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6년,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문무왕
  •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고, 보덕왕으로 봉함.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
  • 676년 문무왕은 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왕의 권위를 크게 강화
  •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한 문무왕을 대왕암에 장사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고려
거란의 침입
  •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 거란의 3차 친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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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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