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25 5급 언어논리 가책형 21번 해설 – 조선 서울 인구

개요

다음은 2025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가책형 21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21. 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조선 건국 이래 행정도시로 기능했던 서울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상업 도시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도 종루 주변에 시전이 설치되어 있어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주로 특정 물품의 독점 판매권을 가진 시전상인들에 의해 왕실과 관아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전국적으로 장시 개설이 증가하고 유통 규모가 커지면서 서울은 상업 도시로서의 면모까지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서울의 인구 증가이다. 인구 증가는 자연적인 증가 이외에도 농촌에서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농민들이 새로운 생업을 찾아 서울로 모여들면서 이루어졌다. 17세기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잦은 기근과 흉년으로 인하여 전국에서 수많은 유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구휼처를 찾아 도회지인 서울로 모여들었다.

숙종 대에는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서 집을 지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숙종 26년 천변(川邊)에 인접한 도로를 침범한 민가가 500호에 달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모두 헐어버리면 소요가 일어날 우려가 있어서 정부는 침범 정도가 심한 집만 철거했다. 거주지에 대한 단속이 강화될 경우 집단 민원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정도가 된 것이다.

정조 대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도성 안뿐 아니라 도성 밖의 인구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외부로부터 유입된 인구가 도성 외곽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일례로 1789년 파악된 서울의 호구 수는 43,929호에 189,153구였고, 그중에 성 밖의 호구 수는 21,835호에 76,782구로 서울 전체 호구 수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비도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조선 전기부터 있었던 종루 주변의 시전 이외에 이현, 칠패, 마포 등 사상인(私商人)들의 새로운 교역처가 생겨났다. 종루 주변 시전을 독점하던 시전상인과 달리, 사상인은 새로운 교역처를 탐색하며 상권을 확장했고 점차 그 세력을 키워나갔다. 서울의 상권이 활성화되자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시장망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상품의 수요가 증대되고 상품의 종류나 교역량도 크게 늘었다.

① 조선 후기에 상품 수요 및 소비 여력의 증대로 인하여 서울의 인구가 급증했다.

② 숙종 대에는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주거지가 도로를 침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③ 조선 후기로 가면서 종루 주변 시전상인들은 이현, 칠패, 마포 등지로 상권을 확대해 나갔다.

④ 1789년 서울에서는 도성 밖의 호구 수가 성안의 호구 수보다 더 많아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⑤ 17세기부터 기근과 흉년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유민은 전국적으로 형성된 시장망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울로 모여들었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조선 후기에 상품 수요 및 소비 여력의 증대로 인하여 서울의 인구가 급증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서울의 인구 증가이다. 인구 증가는 자연적인 증가 이외에도 농촌에서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농민들이 새로운 생업을 찾아 서울로 모여들면서 이루어졌다. 17세기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잦은 기근과 흉년으로 인하여 전국에서 수많은 유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구휼처를 찾아 도회지인 서울로 모여들었다.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비도 크게 증가했다. 서울의 상권이 활성화되자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시장망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상품의 수요가 증대되고 상품의 종류나 교역량도 크게 늘었다.

서울의 인구 증가는 자연적인 증가 이외에도 농촌에서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농민들이 새로운 생업을 찾아 서울로 모여들면서 이루어졌다.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상품의 수요가 증대되고 상품의 종류나 교역량도 크게 늘었다.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숙종 대에는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주거지가 도로를 침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숙종 대에는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서 집을 지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숙종 26년 천변(川邊)에 인접한 도로를 침범한 민가가 500호에 달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조선 후기로 가면서 종루 주변 시전상인들은 이현, 칠패, 마포 등지로 상권을 확대해 나갔다.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비도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조선 전기부터 있었던 종루 주변의 시전 이외에 이현, 칠패, 마포 등 사상인(私商人)들의 새로운 교역처가 생겨났다.

종루 주변 시전상인들과 이현, 칠패, 마포 등 사상인들은 별개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1789년 서울에서는 도성 밖의 호구 수가 성안의 호구 수보다 더 많아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정조 대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도성 안뿐 아니라 도성 밖의 인구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외부로부터 유입된 인구가 도성 외곽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일례로 1789년 파악된 서울의 호구 수는 43,929호에 189,153구였고, 그중에 성 밖의 호구 수는 21,835호에 76,782구로 서울 전체 호구 수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도성 밖의 호구 수: 21,835호

도성 안의 호구 수: 43,929호 – 21,835호 = 22,094호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17세기부터 기근과 흉년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유민은 전국적으로 형성된 시장망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울로 모여들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서울의 인구 증가이다. 인구 증가는 자연적인 증가 이외에도 농촌에서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농민들이 새로운 생업을 찾아 서울로 모여들면서 이루어졌다. 17세기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잦은 기근과 흉년으로 인하여 전국에서 수많은 유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구휼처를 찾아 도회지인 서울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전국적으로 형성된 시장망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울로 모여들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2025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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