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출]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 49번 문제 정답

문제

다음은 2007년도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3급 49번 문제와 정답이다.

 

49. 다음 자료는 어느 서양 신부가 어떤 전쟁에 대해 쓴 글에서 뽑은 것이다.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이 전쟁이 조선, 중국, 일본에 끼친 영향을 2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4점]

고니시는 2만 명의 전투원과 함께 총 643척의 크고 작은 배에 편승하여 쓰시마 섬을 출발하였다. 특히 부산성이라고 불리는 요새는 일본인들이 들이닥칠 첫 관문인 관계로 그 곳에는 600여 명의 병사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마을에서 모은 평민들이 있었다. ……

‘꼬라이’병사들은 모두가 매우 견고한 가죽으로 만든 가슴받이를 몸에 두르고 무장을 하였으며, 머리에는 화살을 막아 내려고 철모를 썼는데, 그들 중에는 궁수들이 많고 또한 미늘창을 쓰는 병사도 있었다. 마침내 고니시는 음력 4월 12일에 요새 밖의 모든 마을을 일차적으로 불지를 것을 명령하였다. …… ‘꼬라이’ 병사들은 훌륭한 무사들로서 왕에 대한 충절이 넘쳐흘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용감히 싸웠다. 수비대장이 앞장서서 처음으로 전사하였으며, 아무도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가문 있는 ‘꼬라이’ 여인들은 정결하고 수절하는 것으로 명성이 나 있었다.

 

 

 

 

 

 

 

 

 

 

 

참고: 임진왜란

정답은 “전쟁의 결과 조선은 인구가 크게 줄고 농토가 황폐해졌으며,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또한 토지대장과 호적이 대부분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졌다. 일본은 도요토미 막부에서 도쿠가와 막부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약탈해간 조선의 문화재와 포로로 잡아간 학자, 기술자 등에 의해서 일본 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북방의 여진족이 성장하여 청나라를 세우고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명나라를 멸한 후 중원을 차지하게 되었다.”이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007년도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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