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구려 왕별 업적 (광개토 대왕, 장수왕) – 기출 요약

고구려 태조왕(1세기 후반)

정복 활동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

옥저와 동예를 정복

요동 지방 진출 시도

 

중앙 집권 강화

군사력과 경제력을 토대로 왕권이 안정되어 왕위가 독점적으로 세습

계루부 출신의 고씨가 왕위를 독점적으로 세습

5부 체제로 발전

 

고구려 고국천왕(2세기 후반)

행정적 5부 개편

부족적인 전통을 지녀 온 5부가 행정적 성격의 5부로 개편

 

왕위 부자 상속

왕위 계승이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제로 확립

 

중앙 집권화

족장들이 중앙 귀족으로 편입되는 등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화가 더욱 진전

 

진대법

먹을거리가 모자란 봄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194년)

 

고구려 미천왕

낙랑군 축출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압록강 중류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고구려 고국원왕

수도 함락

전연의 침공으로 수도가 함락되는 큰 타격을 받아 서방 진출이 위축

 

평양성 전사

백제 근초고왕의 침입으로 평양성에서 전사

 

고구려 소수림왕

중앙 집권 체제 강화

율령의 반포, 불교의 공인, 태학의 설립 등을 통해 지방에 산재한 부족 세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 중앙 집권 국가로 체제를 강화

 

광개토 대왕

신라 구원과 왜 격퇴

신라 해안에 나타나던 왜의 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머묾. 이에 한반도 남부에까지 영향력 행사

 

만주 진출

만주 지방에 대한 대규모의 정복 사업을 단행

 

연호

‘영락’이라는 연호 사용

 

광개토 대왕릉비

광개토 대왕릉 비문이 웅건한 서체로 쓰여짐

 

장수왕

평양 천도·안학궁 건축

427년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했다.

장수왕이 평양에 세운 안학궁은 궁궐 건축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백제 수도 함락·한강 유역 진출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한강 전 지역을 포함하여 죽령 일대에서 남양만을 연결하는 선까지 그 판도를 넓혔다.

 

중원 고구려비

고구려의 한강 유역 진출은 광개토 대왕릉비와 중원 고구려비에 잘 나타나 있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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