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의 경제활동 – 기출 요약

귀족의 경제 생활

귀족의 경제 기반은 대대로 상속받은 토지와 노비, 관료가 되어 받은 과전과 녹봉 등이 있었다.

관리가 된 귀족은 과전에서 생산량의 10분의 1을 거두었으며, 녹봉으로 1년에 두 번씩 곡식이나 비단을 받았다.

귀족은 자신의 소유지를 노비에게 경작시키거나 소작을 시켜 생산량의 반을 거두었다.

 

농민의 경제 생활

시비법

시비법이 발달하면서 휴경지가 점차 줄어 계속해서 경작할 수 있는 토지가 늘었다.

 

시비법(施肥法)의 발달

밭을 묵혀서 그 밭에 자란 풀을 태우거나 갈아엎어 비료를 주던 방식에서 들의 풀이나 갈대를 베어 와 태우거나 갈아엎은 녹비에 동물의 똥오줌을 풀이나 갈대와 함께 사용하는 퇴비가 만들어졌다.

 

2년 3작 윤작법

밭농사는 2년 3작 윤작법이 점차 보급되었다.

 

이앙법(모내기)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될 정도로 발전하였다.

 

농상집요

고려 후기에는 이암이 중국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하였다.

 

문익점의 목화씨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졌다.

 

상업 활동

경시서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하였다.

 

소금 전매제

고려 후기에는 국가가 재정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소금의 전매제를 시행하였다.

 

화폐 주조

성종 때에는 철전인 건원중보를 만들었다.

숙종 때에는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들었다.

 

활구(은병)

우리 나라의 지형을 본떠서 은 1근으로 만든 고가의 화폐로, 은병 하나의 값은 포 100여 필이나 되었다.

 

무역 활동

벽란도

국내 상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면서 송, 요 등 외국과 무역도 활발해졌다.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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