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 원의 내정 간섭 – 기출 요약

배경

고려는 몽골과 강화하고 삼별초의 항쟁이 진압되면서, 이후 80여 년간 원의 간섭을 받는 원 간섭기에 접어들었고, 자주성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

 

일본 원정과 정동행성

몽골과 강화한 이후, 고려는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을 강요받았다.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였다.

일본 원정 이후에도 설치했던 정동행성을 계속 유지하여 내정 간섭 기구로 삼았다.

 

정동행성

원은 외지의 통치와 대규모의 군사 행동을 위해서 여러 가지 성격의 행성을 설치하였다. 정동행성은 일본 원정을 위해 충렬왕 6년(1200)에 설치하였다.

 

영토 상실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가 설립되어 넓은 영토를 빼앗기기도 하였다.

 

부마국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바뀌었다.

 

만호부

원은 만호부를 설치하여 고려의 군사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루가치

원은 다루가치라는 감찰관을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공녀와 수탈

원은 공녀라 하여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 갔으며, 금, 은, 베를 비롯하여 인삼, 약재 등 특산물을 징발하여 농민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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