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출] 2007학년도 수능 국사 6번 해설 – 조선 후기 민영 광산

문제

다음은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국사 6번 문제 해설이다.

 

6. 다음과 같은 조치가 이루어진 시기의 경제 상황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호조판서 서영보가 아뢰길, “전국 각도에 금을 몰래 채취하는 무리가 없는 곳이 없으니, 지금 비록 엄히 막고 있으나 영원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도의 금이 생산되는 곳에는 금점(金店) 설치를 허락하고 은점(銀店)의 예에 따라 호조에서 관리하여 세금을 거두면 편리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대신의 의견을 들은 후 허락하였다.
<보 기>
ㄱ. 덕대가 물주의 자본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였다.

ㄴ. 각 지방의 상업 중심지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는 사상(私商)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ㄷ. 정부는 경제 활동을 장악하기 위해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의 동전을 유통시키려 하였다.

ㄹ. 왕실과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시전의 종류가 늘어나고 이들의 독점 판매권이 강화되었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조선 후기 경제 상황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ㄱ. 덕대가 물주의 자본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였다.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ㄴ. 각 지방의 상업 중심지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는 사상(私商)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ㄷ. 정부는 경제 활동을 장악하기 위해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의 동전을 유통시키려 하였다.

고려 성종 때에는 철전인 건원중보를 만들었다.

숙종 때에는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들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ㄹ. 왕실과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시전의 종류가 늘어나고 이들의 독점 판매권이 강화되었다. 

조선 전기, 시전 상인은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에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부여받았다.

이들 시전 중에서 명주, 종이, 어물, 모시, 삼베, 무명을 파는 점포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후에 이를 육의전이라 하였다.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2007학년도 수능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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