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출] 2007학년도 수능 한국근현대사 11번 해설 – 1940년대 무장 독립 전쟁

문제

다음은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한국근현대사 11번 문제 해설이다.

 

11. 다음 두 사람의 회고를 바탕으로 당시의 상황을 추론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1944년 7월 7일. 이 날은 일본군 병영을 탈출해 충칭을찾아가는 대륙 횡단을 위해, 중국 벌판의 황토 속으로 그뜨거운 지열과 엄청난 비바람과 매서운 눈보라의 길, 6천리를 헤매기 시작한 날이다.

-장준하, 『돌베개』-

○ 협의회의 군사 문제 토론회에서는 나에게 중국 공산당의 수도 연안(옌안)에 가서 국내에 대한 군사 대책을 세워 보라고 하였다. 1944년 11월 27일에 경성을 출발하였다.

-김태준, 『연안행』-

① 만주에는 조선 혁명군이 활약하고 있었다.

② 충칭에는 대일전에 참전한 한국 광복군이 있었다.

③ 일제는 우리 청년들을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내몰았다.

④ 국내외 독립 운동 조직 간에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⑤ 광복에 대비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달성하려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40년대 상황에 대한 내용이다.

 

① 만주에는 조선 혁명군이 활약하고 있었다.

1931년대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충칭에는 대일전에 참전한 한국 광복군이 있었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중국 충칭에 정착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일제는 우리 청년들을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내몰았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1943년 학도 지원병제가 실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국내외 독립 운동 조직 간에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위 김태준의 『연안행』에서 보기의 내용이 언급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광복에 대비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달성하려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이다.

 

2007학년도 수능 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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