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출] 2007학년도 9월 국사 모의평가 15번 해설 – 신문왕 무열왕

문제

다음은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사회탐구영역 국사 15번 문제 해설이다.

 

15. (가)와 (나)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가) 시기에는 화백 회의를 통하여 왕을 추대하기도 하였다.

② (가) 시기에는 지방 세력들이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③ (나) 시기에는 왕권과 결탁한 6두품 세력이 부각되었다.

④ (나) 시기에는 왕명을 받들고 기밀을 관장하는 집사부 시중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⑤ (가)에서 (나)로의 변화는 통일 전쟁기에 국왕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일어났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가) 576년은 삼국 통일 이전이다.

(나) 신문왕은 통일 신라 때 왕이다.

 

① (가) 시기에는 화백 회의를 통하여 왕을 추대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여러 부족의 대표가 함께 모여 정치를 운영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던 신라 초기의 전통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귀족은 화백 회의를 통하여 국왕을 폐위시킨 적도 있었고, 새 국왕을 추대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왕권을 견제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가) 시기에는 지방 세력들이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통일 신라 말,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였다.

호족들은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자기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여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고 칭하면서 그 지방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나) 시기에는 왕권과 결탁한 6두품 세력이 부각되었다.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정책으로 진골 귀족 세력은 약화되었지만, 진골 귀족 세력에 눌려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던 6두품 세력이 왕권과 결탁하여 상대적으로 부각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나) 시기에는 왕명을 받들고 기밀을 관장하는 집사부 시중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신문왕의 직전 왕이었던 태종 무열왕은 왕명을 받들고 기밀 사무를 관장하는 집사부의 장관인 시중의 기능을 강화하고, 귀족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던 상대등의 세력을 억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가)에서 (나)로의 변화는 통일 전쟁기에 국왕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일어났다.

통일 이후 신라는 강화된 경제력과 군사력을 토대로 왕권을 전제화하였다.

태종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통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하였다.

신문왕은 귀족 세력 숙청, 녹읍 폐지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이다.

 

2007학년도 9월 국사 수능 모의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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