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남북국의 사회 모습 – 기출 요약

통일 후 신라 사회의 변화

진골 귀족

최고 신분층인 진골 귀족은 중앙 관청의 장관직을 독점하였고, 합의를 통하여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전통도 여전히 유지하였다.

 

6두품의 진출과 한계

6두품 출신은 학문적 식견과 실무 능력을 바탕으로 국왕을 보좌하면서 정치적 진출을 활발히 하였다.

하지만, 신분의 제약으로 인하여 중앙 관청의 우두머리나 지방의 장관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다.

 

통일 신라 말의 사회 모순

9세기 말 진성 여왕 때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모순이 증폭되었다.

상주에서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난을 시작으로 농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중앙 정부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잃어 갔다.

 

발해의 사회 구조

발해의 지배층은 왕족인 대씨와 귀족인 고씨 등 고구려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발해의 주민 중 다수는 말갈인이며, 이들은 고구려 전성기 때부터 고구려에 편입된 종족이었다.

발해의 지식인은 당에 유학하여 당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응시하였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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