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민족 유일당 운동
제1차 국공 합작
1924년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1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졌다. 이를 배경으로 분열된 독립운동 진영을 통합하자는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어났다.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
1926년 중국 북경에서 안창호의 주도로,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가 창립되었다.
이로 인해 만주에서 3부 통합 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족주의 진영의 분열
국내에서는 최린, 이광수 등이 자치 운동(자치론)을 전개하며 일제에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이상재, 안재홍 등의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였고, 나아가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여 민족 운동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사회주의 진영의 세력 약화
일제는 1925년 치안 유지법을 만들어 사회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이에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진영과의 연대하고자 하였다.
정우회 선언
치안 유지법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은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협동을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신간회 설립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타협적 민족주의 |
← 분열 → | 비타협적 민족주의 |
← 연대 → | 사회주의 |
이광수, 최린 등 | 이상재, 안재홍 등 | 치안 유지법으로 위축됨 | ||
자치론 주장 | 자치론 비판 | 정우회 선언 | ||
↓↓ | ||||
신간회 결성 |
신간회
결성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최대 규모의 합법적인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하였다.
강령
신간회는 민족의 단결과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고 기회주의자를 배격하는 것을 기본 강령으로 내세웠다.
근우회
신간회 출범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 근우회였다. 근우회는 김활란 등이 중심이 되어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으로 조직되었고, 여성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새생활 개선을 행동 강령으로 하였다.
활동
신간회는 합법적인 공간을 활용하여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식민지 교육 반대, 타협적 정치 운동 반대 등을 주장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을 비판하였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신간회는 광주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전국적인 민중 대회를 준비하였다.
해소
코민테른은 중국에서 제1차 국공 합작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 계열과의 협동 전선 해체를 지시하였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신간회 해소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으나, 1931년 열린 전체 대회에서 신간회를 해소하기로 결정하였다.
코민테른
국제 공산당 조직 연합체로, 각국의 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였다. 코민테른의 결정은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
의의
신간회의 결성은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극복하여 민족 협동 전선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동아출판, 해냄에듀)
관련 문서
- 민족 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민족 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민족 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일제 강점기
- 한국사 이론 전체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