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배경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공업이 더욱 발달하고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심각한 식량 문제에 부딪혔다.
이에 일제는 한반도에서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여 그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내용
일제는 다수확 품종으로 벼 종자를 개량하고 비료 사용을 확대하였으며, 농토를 개간하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또한 저수지나 제방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에 수리 조합을 조직하였다.
결과
증산량 보다 많은 수탈량
일제는 쌀이 목표대로 증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에 따라 우리 농민은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기아 선상에 허덕이게 되었다.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생산되는 값싼 잡곡으로 충당하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였다.
식민지 지주제 강화
일본인과 조선인 대지주들은 토지를 집적함으로써 식민지 지주제가 강화했다.
농민의 어려움
당시 우리 농민은 수리 조합비, 증산에 투입된 운반비 등도 부담함으로써 이중의 고통을 받았고, 생계는 더욱 어려워져 갔다.
더욱 가난해진 많은 농민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거나,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만주 지역 등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
쌀 중심의 단작 농업
산미 증식 계획으로 인해 쌀 가격 변동에 취약한 쌀농사 위주의 단작 농업이 정착되었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관련 문서
-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일제 강점기
- 한국사 이론 전체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