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 전기 불교 도교 민간 신앙 – 기출 요약

불교

도첩제

성리학이 주도 이념이었던 조선 시대에 불교계는 크게 위축되었다.

도첩제를 실시하여 승려가 되고자 하는 출가를 제한하였다.

 

세종 시기

세종 때에는 교단을 정리하면서 선종과 교종 두 종파에 모두 36개 절만 인정하였다.

 

세조 시기

세조 때에는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교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하고 보급하는 등 적극적인 불교 진흥책을 펴서 일시적으로 불교가 중흥되기도 하였다.

 

성종 시기

성종 이후 사림의 적극적인 비판으로 불교는 점차 왕실에서 멀어져 산간 불교로 바뀌었다.

 

명종 시기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의 지원 아래 일시적인 불교 회복 정책이 펼쳐진 결과, 보우(普雨)가 중용되고 승과가 부활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승병

16세기 후반, 휴정(서산대사)과 같은 고승이 배출되어 교리를 가다듬었고, 임진왜란 때 승병이 크게 활약함으로써 불교계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였다.

 

도교

소격서

도교는 크게 위축되어 사원이 정리되고 행사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제천 행사가 국가의 권위를 높이는 점이 인정되어 소격서를 설치하고, 참성단에서 일월성신에 제사 지내는 초제가 시행되었다.

 

풍수지리설

한편, 풍수지리설과 도참 사상이 조선 초기 이래로 중요시되어 한양 천도에 반영되었으며, 양반 사대부의 묘지 선정에도 작용하였다.

 

기타 민간 신앙

무격 신앙, 산신 신앙, 삼신 숭배, 촌락제 등은 백성 사이에 깊이 자리잡았다.

특히, 계절에 따른 세시 풍속은 유교 이념과 융합되면서 조상 숭배 의식과 촌락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식이 되었다. 불교식으로 화장하던 풍습이 묘지를 쓰는 것으로 바뀌면서 명당 선호 경향이 두드러졌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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