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1930년대 무장 독립 전쟁 – 기출 요약

1930년대 무장 독립 전쟁

배경

일제가 만주사변(1931년)을 일으키고,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수립한 이후 만주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이 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립군은 보다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에 독립군은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항일 의식이 고조된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함으로써 이 난국을 타개하려 하였다.

 

한·중 연합 작전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 ↘
혁신 의회
(북만주)
국민부
(남만주)
한국 독립당
한국 독립군
조선 혁명당
조선 혁명군

조선 혁명군과 한국 독립군은 각각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 전쟁을 전개하였다.

 

한국 독립군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 독립군이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에 승리했다.

지청천을 비롯한 한국 독립군의 일부는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고, 한국광복군을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조선 혁명군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중국 관내의 무장 독립 전쟁

배경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이후 만주 일대에서 무장 투쟁이 어려워지자,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다.

 

민족 혁명당

1935년 중국 난징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의 연결선상에서 민족 혁명당이 결성되었다.

민족 혁명당 결성에는 김구를 제외한 한국 독립당, 의열단, 신한독립당, 조선 혁명당, 대한독립당 등이 참여하였다.

 

한국 국민당

민족 혁명당에 합류하지 않은 김구는 한국 국민당을 결성했다.

 

조선 민족 혁명당

의열단의 김원봉의 전권 장악에 반발한 한국 독립당계(조소앙)와 신한 독립당계(지청천 또는 이청천)가 탈퇴한 후, 민족 혁명당은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편됐다.

탈퇴한 조소앙은 한국 독립당을 재건했다.

탈퇴한 지청천(또는 이청천)은 조선 혁명당을 재건했다.

 

조선 민족 전선 연맹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 민족 혁명당은 다른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였다.

 

조선 의용대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아래 중국 관내 최초의 한국인 무장 부대인 조선 의용대가 김원봉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조선 의용대는 일본군의 정보 수집, 포로 신문, 후방 교란, 심리전 등을 수행하였다.

 

분화

조선 의용대는 항일 투쟁에 대한 노선이 나뉘어져 분화되었다.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원하는 조선 의용대 대원들은 중국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여,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결성했다.

김원봉을 포함한 조선 의용대 본대 잔류 인원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있는 충칭으로 이동하여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민족 혁명당 결성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
한국 국민당
(김구)
.
조선 민족 혁명당 개편
(김원봉)

탈퇴
한국 독립당
(조소앙)

조선 혁명당
(지청천)

조선 민족 전선 연맹 결성
조선 의용대
↓ 분화 ↓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조선 의용대 본대
(김원봉)

합류
한국광복군

 

만주에서의 무장 독립 전쟁

동북 인민 혁명군

중국 공산당은 만주 지역 곳곳에 만들어진 항일 유격대를 통합하여 동북 인민 혁명군을 조직하였다(1933년).

 

동북 항일 연군

이후 동북 인민 혁명군은 사상에 관계없이 모든 반일 세력을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동북 항일 연군으로 확대·개편되었다(1936년).

 

조국 광복회

동북 항일 연군 내의 한 부대로 편성된 한인 유격대는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까지 포함하여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였다(1936년).

1937년 이들은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 아래 함경도 보천보의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보천보 전투).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동아출판, 해냄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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