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2 5급 상황판단 인책형 21번 해설 – 유향소 경재소

개요

다음은 2012년 국가공무원 5급 상황판단영역 인책형 21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21. 다음 글에 근거할 때, 옳지 않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조선시대 사족(士族)은 그들의 위세를 과시하고 이익을 지켜나가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스스로 유향소(留鄕所)를 만들어 중앙정부가 군현에 파견한 수령을 견제하는 한편, 향리세력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고 향촌민을 원활히 통제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조선 초기에 유향소의 사족이 과도하게 권익을 추구하다가 수령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태종이 유향소를 혁파하자 수령과 향리의 비리와 탐학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중앙정부는 서울에 경재소(京在所)란 통제기구를 마련한 뒤 유향소를 부활시키고, 유향소의 폐단을 막고자 노력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향소의 사족과 수령이 결탁하여 백성들을 괴롭히자 세조는 이를 구실로 다시 유향소를 혁파하였다.

유향소는 사림파가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성종대에 다시 설치되었는데, 사족이 유향소를 통해 불효 등으로 향촌질서를 깨트리는 자들을 규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는 사림파가 유향소를 통해 성리학적 질서를 확고히 하여 백성들을 다스리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집권세력인 훈구파에 대항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림파의 의도가 관철된 곳은 사림파의 세력이 강한 영남 일부 지역 뿐이었고, 그밖의 대부분 지역은 훈구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훈구파가 유향소의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경재소를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향촌자치는 중앙의 정치논리에 의해 쉽게 제약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사림들은 그들이 세력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유향소를 혁파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대신 향약보급을 통해 향촌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수령권이 강화되면서 유향소의 지위가 격하되고, 그에 따라 이를 통할하던 경재소도 1603년 영구히 폐지되었다.

<보 기>
ㄱ. 사족은 유향소를 통해 향촌민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ㄴ. 유향소는 지방 사족 자치기구였기 때문에 중앙 정치권력과 무관하였다.

ㄷ. 경재소는 유향소를 혁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ㄹ. 유향소는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조선후기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① ㄱ

② ㄴ, ㄷ

③ ㄷ, ㄹ

④ ㄱ, ㄴ, ㄹ

⑤ ㄴ, ㄷ, ㄹ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ㄱ. 사족은 유향소를 통해 향촌민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사족(士族)은 그들의 위세를 과시하고 이익을 지켜나가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스스로 유향소(留鄕所)를 만들어 중앙정부가 군현에 파견한 수령을 견제하는 한편, 향리세력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고 향촌민을 원활히 통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ㄴ. 유향소는 지방 사족 자치기구였기 때문에 중앙 정치권력과 무관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유향소(留鄕所)를 만들어 중앙정부가 군현에 파견한 수령을 견제하는 한편,

이에 중앙정부는 서울에 경재소(京在所)란 통제기구를 마련한 뒤 유향소를 부활시키고, 유향소의 폐단을 막고자 노력하였다.

훈구파가 유향소의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경재소를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향촌자치는 중앙의 정치논리에 의해 쉽게 제약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ㄷ. 경재소는 유향소를 혁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앙정부는 서울에 경재소(京在所)란 통제기구를 마련한 뒤 유향소를 부활시키고, 유향소의 폐단을 막고자 노력하였다.

훈구파가 유향소의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경재소를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이

임진왜란 이후에는 수령권이 강화되면서 유향소의 지위가 격하되고, 그에 따라 이를 통할하던 경재소도 1603년 영구히 폐지되었다.

이렇게 되자 사림들은 그들이 세력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유향소를 혁파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대신 향약보급을 통해 향촌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경재소는 유향소를 통제하여 폐단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ㄹ. 유향소는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조선후기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수령권이 강화되면서 유향소의 지위가 격하되고, 그에 따라 이를 통할하던 경재소도 1603년 영구히 폐지되었다.

수령권이 강화되면서 유향소의 지위가 격하되었다는 내용만 언급될 뿐, 조선후기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⑤번이다.

2012 5급 PSAT 상황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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