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3 외교관후보자 선발 상황판단 인책형 22번 해설 – 성균관 반궁 반촌 추론

개요

다음은 2013년 국가공무원 외교관후보자 선발 PSAT 상황판단영역 인책형 22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22. 다음 글을 근거로 추론할 때 옳은 것은?

성균관을 다른 말로 ‘반궁(泮宮)’이라 한다. 반궁이란 말의 유래는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周)나라 때 천자(天子)의 나라에 설립한 학교를 벽옹(辟雍)이라 하고, 제후의 나라에 설립한 학교를 반궁이라 하였다. 반궁이란 말은 ‘반수(泮水)’에서 온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궁(宮)’은 궁전이란 뜻이 아니고 단순히 건물이란 뜻이다. 이런 내력으로 인해 성균관과 관련된 곳에 흔히 ‘반(泮)’자를 붙였으니, 성균관 주위의 마을을 ‘반촌(泮村)’이라 하고 그 곳의 주민은 반민(泮民), 반인(泮人)이라 불렀던 것이다.

18세기의 저명한 문인이자 학자인 서명응이 쓴 <안광수전(安光洙傳)>에 반촌의 유래와 반촌 주민에 관한 소상한 언급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반촌은 고려 말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 1243~1306)이 자기 집안의 노비 100여 명을 희사하여 성균감(성균관의 전신)을 부흥할 것을 도운 데서 비롯된다.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성균관을 한양으로 옮기자 그 노비 자손들이 옮겨와 살면서 하나의 동리를 이루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곳을 반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반촌의 형성 유래가 이러했으므로, 반촌의 거주자 반인의 삶은 성균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대사성 이하 관료조직과 교관 그리고 유생들이 있었다. 더욱이 성균관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의동인 명륜당 이외에도 학생들의 기숙사와 식당이 있었다. 이런 건물을 관리하고 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였고, 반인들은 바로 이 성균관의 잡역을 세습적으로 맡아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반촌은 새로운 이념 서클의 온상 역할도 했다. 이승훈과 정약용 등은 당시 지방에서 새롭게 시작된 천주교 학습을 반촌에서 시도하다가, 척사(斥邪)파의 공격을 받고 지방으로 축출되기도 했다.

① 한양에 반촌이 형성된 것은 고려말기이다.

② 성균관이 쇠퇴한 시기에는 반인들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③ 조선시대에 천주교는 반촌을 중심으로 동심원 모양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④ 성균관은 학생인 반인․유생을 비롯하여 대사성 이하 관료와 교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⑤ 성균관을 반궁이라 부른 것은 조선을 천자의 나라로 본 당시의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한양에 반촌이 형성된 것은 고려말기이다.

조선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성균관을 한양으로 옮기자 그 노비 자손들이 옮겨와 살면서 하나의 동리를 이루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곳을 반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 초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성균관이 쇠퇴한 시기에는 반인들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반촌의 형성 유래가 이러했으므로, 반촌의 거주자 반인의 삶은 성균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대사성 이하 관료조직과 교관 그리고 유생들이 있었다. 더욱이 성균관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의동인 명륜당 이외에도 학생들의 기숙사와 식당이 있었다. 이런 건물을 관리하고 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였고, 반인들은 바로 이 성균관의 잡역을 세습적으로 맡아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조선시대에 천주교는 반촌을 중심으로 동심원 모양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반촌은 새로운 이념 서클의 온상 역할도 했다. 이승훈과 정약용 등은 당시 지방에서 새롭게 시작된 천주교 학습을 반촌에서 시도하다가, 척사(斥邪)파의 공격을 받고 지방으로 축출되기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성균관은 학생인 반인·유생을 비롯하여 대사성 이하 관료와 교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대사성 이하 관료조직교관 그리고 유생들이 있었다. 더욱이 성균관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의동인 명륜당 이외에도 학생들의 기숙사와 식당이 있었다. 이런 건물을 관리하고 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였고, 반인들은 바로 이 성균관의 잡역을 세습적으로 맡아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반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성균관을 반궁이라 부른 것은 조선을 천자의 나라로 본 당시의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성균관을 다른 말로 ‘반궁(泮宮)’이라 한다. 반궁이란 말의 유래는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周)나라 때 천자(天子)의 나라에 설립한 학교를 벽옹(辟雍)이라 하고, 제후의 나라에 설립한 학교를 반궁이라 하였다. 반궁이란 말은 ‘반수(泮水)’에서 온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궁(宮)’은 궁전이란 뜻이 아니고 단순히 건물이란 뜻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2013 외교관후보자 선발 PSAT 상황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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