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3 5급 언어논리 인책형 3번 해설 – 근대적 공론장

개요

다음은 2013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인책형 3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3. 다음 글의 논지와 부합하는 것은?

근대적 공론장의 형성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은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적용하여 한국적 근대 공론장의 원형을 찾는다. 이들은 유럽에서 18~19세기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신문, 잡지 등이 시민들의 대화와 토론에 의거한 부르주아 공론장을 형성하였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독립신문>이 근대적 공론장의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만민공동회라는 새로운 정치 권력이 만들어낸 근대적 공론장을 통해, 공화정의 근간인 의회와 한국 최초의 근대적 헌법이 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공론장의 형성을 근대 이행의 절대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근대 이행의 다른 길들에 대한 불신과 과소평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갑신정변과 같은 소수 엘리트 주도의 혁명이나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민중봉기가 아니라, 만민공동회와 같은 다수 인민에 의한 합리적인 토론과 공론에 의거한 민주적 개혁이 올바른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나아가 이러한 태도는 당시 고종이 만민공동회의 주장을 수용하여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채택했더라면 국권박탈이라는 비극만은 면할 수 있었으리라는 비약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개인의 자각에 근거한 공론장과 평화적 토론을 통한 공론의 형성, 그리고 공론을 정치에 실현시킬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체제가 바로 ‘근대’라는 확고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시민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인민들의 행위가 근대적 정치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만 중시하고, 공론 형성의 주체인 시민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시대 상황은 특수한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근대적 정치행위가 실패한 것은 인민들의 한계가 아니라, 전제황실 권력의 탄압이나 개혁파 지도자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반봉건 민중운동의 지향점, 그리고 토지문제 해결을 통한 근대 이행이라는 고전적 과제에 답할 수가 없다. 또한 근대적 공론장에 기반한 근대국가가 수립되었을지라도 제국주의 열강들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었겠는지, 그 극복이 농민들의 지지 없이 가능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이 농민운동을 근대 이행을 방해하는 역사의 반역으로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이 적극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면 근대 공론장 이론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① <독립신문>은 근대적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② 농민운동이 한국의 근대 이행을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

③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이 한국의 근대 공론장 형성을 가속화하였다.

④ 고종이 만민공동회의 주장을 채택하였다면 국권박탈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⑤ 근대 공론장 이론의 한국적 적용은 몇 가지 한계가 있지만 근대 이행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였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독립신문>은 근대적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독립신문>이 근대적 공론장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근대적 공론장의 형성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윗 글의 논지는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 등과 같은 공론장의 형성을 근대 이행에 절대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고 <독립신문>은 근대적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윗 글의 논지는 아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농민운동이 한국의 근대 이행을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

공론장의 형성을 근대 이행의 절대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농민운동을 근대 이행을 방해하는 역사의 반역으로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윗 글의 논지이다.

그러므로 농민운동이 한국의 근대 이행을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윗 글의 논지와 부합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이 한국의 근대 공론장 형성을 가속화하였다.

공론장 이론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은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가 근대적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론장의 형성을 근대 이행의 절대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근대적 공론장에 기반한 근대국가가 수립되었을지라도 제국주의 열강들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었겠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어설 여지가 없게 한다는 것이 윗 글의 논지이다.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과 한국의 근대 공론장 형성의 가속화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고종이 만민공동회의 주장을 채택하였다면 국권박탈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윗 글은 공론장의 형성을 근대 이행의 절대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당시 고종이 근대적 공론장이었던 만민공동회의 주장을 수용하여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채택했더라면 국권박탈이라는 비극만은 면할 수 있었으리라는 비약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기의 내용은 근대적 공론장의 형성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근대 공론장 이론의 한국적 적용은 몇 가지 한계가 있지만 근대 이행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반봉건 민중운동의 지향점, 그리고 토지문제 해결을 통한 근대 이행이라는 고전적 과제에 답할 수가 없다. 또한 근대적 공론장에 기반한 근대국가가 수립되었을지라도 제국주의 열강들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었겠는지, 그 극복이 농민들의 지지 없이 가능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이 농민운동을 근대 이행을 방해하는 역사의 반역으로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이 적극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면 근대 공론장 이론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2013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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