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4 민경채 상황판단 A책형 12번 해설 – 작위 오등관제 봉작제 고려 문종

개요

다음은 2014년 국가공무원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민경채) 상황판단영역 A책형 12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12. 다음 글을 근거로 추론할 때, <보기>에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작위 등급을 5개로 하는 오등작제(五等爵制)는 중국 주나라와 당나라의 제도를 따른 것이다. 오등작제의 작위는 높은 순부터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으로 불렀다. 작위를 받으면 봉건귀족으로 인정되며 나라에서 주는 식읍(食邑)을 받기도 했다.

왕족이나 공신을 작위에 봉하는 봉작제(封爵制)는 고려 때 처음 들여왔다. 왕족은 공·후·백의 삼등작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비왕족에 대해서는 오등작제를 사용하였다. 비왕족에 대한 오등작제가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고려 문종 때로, 국공(國公)은 식읍 3,000호에 품계는 정2품으로, 군공(郡公)은 2,000호에 종2품으로, 현후(縣侯)는 식읍 1,000호, 현백(縣伯)은 700호, 개국자(開國子)는 500호에 품계는 셋 모두 정5품으로, 현남(縣男)은 300호에 종5품으로 하였다. 그러나 제도가 정한대로 식읍을 주는 것은 아니었고 실제 받는 식읍은 달랐다.

조선 개국 후인 1401년 조선 태종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왕족인 공(公)을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공신인 후(侯)와 백(伯)을 각각 군(君)과 부원군(府院君)으로 바꾸도록 했다. 이후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격상되었지만 여전히 군(君)으로 봉했다.

<보 기>
ㄱ. 조선 태종시대의 공신은 부원군 작위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ㄴ. 고려 문종 때 완성된 봉작제에 따르면 현후와 현백이 받는 품계는 달랐을 것이다.

ㄷ. 고려 문종 때 완성된 봉작제에 따라 종5품 품계와 식읍 300호로 정해진 현남 작위에 봉해진 사람은 왕족이었을 것이다.

① ㄱ

② ㄴ

③ ㄱ, ㄴ

④ ㄱ, ㄷ

⑤ ㄴ, ㄷ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ㄱ. 조선 태종시대의 공신은 부원군 작위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개국 후인 1401년 조선 태종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왕족인 공(公)을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공신인 후(侯)와 백(伯)을 각각 군(君)과 부원군(府院君)으로 바꾸도록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ㄴ. 고려 문종 때 완성된 봉작제에 따르면 현후와 현백이 받는 품계는 달랐을 것이다.

비왕족에 대한 오등작제가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고려 문종 때로, 국공(國公)은 식읍 3,000호에 품계는 정2품으로, 군공(郡公)은 2,000호에 종2품으로, 현후(縣侯)는 식읍 1,000호, 현백(縣伯)은 700호, 개국자(開國子)는 500호에 품계는 셋 모두 정5품으로,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ㄷ. 고려 문종 때 완성된 봉작제에 따라 종5품 품계와 식읍 300호로 정해진 현남 작위에 봉해진 사람은 왕족이었을 것이다.

왕족이나 공신을 작위에 봉하는 봉작제(封爵制)는 고려 때 처음 들여왔다. 왕족은 공·후·백의 삼등작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비왕족에 대해서는 오등작제를 사용하였다. 비왕족에 대한 오등작제가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고려 문종 때로, 국공(國公)은 식읍 3,000호에 품계는 정2품으로, 군공(郡公)은 2,000호에 종2품으로, 현후(縣侯)는 식읍 1,000호, 현백(縣伯)은 700호, 개국자(開國子)는 500호에 품계는 셋 모두 정5품으로, 현남(縣男)은 300호에 종5품으로 하였다. 그러나 제도가 정한대로 식읍을 주는 것은 아니었고 실제 받는 식읍은 달랐다.

비왕족에 대한 오등작제가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고려 문종 때이다. 이 중 현남(縣男)은 300호에 종5품으로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2014 민경채 PSAT 상황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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