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
백제 건국
기원전 18년, 고구려 주몽의 아들로 알려진 온조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의 하남 위례성에 정착하였다.
백제의 성장
백제는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과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 세력의 결합으로 성립되었다.
우수한 철기 문화를 보유한 유이민 집단이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백제 고이왕
지배 체제 정비
관등제를 정비하고 관복제를 도입
6좌평제와 16관등제의 기본틀을 마련
중앙 집권 국가의 토대를 형성
정치 체제 정비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정치 체제를 정비
백제 근초고왕
마한 정복
4세기 중반 근초고왕은 마한 세력을 정복하여 전라도 남해안에 이르렀다.
고구려 평양성 공격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371년).
역사서 편찬
근초고왕 때 고흥이 <서기>를 편찬하였다.
백제 침류왕
불교 공인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백제의 위기
나·제 동맹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국내성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옮기고(427년), 남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였다.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나·제 동맹)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항하였다.
한성 함락
고구려는 3만의 군대를 보내 백제를 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함으로써 삼국간의 항쟁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475년).
이때 백제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되었다.
웅진 천도
백제 문주왕은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다(475년).
나·제 동맹 강화
백제 동성왕은 신라와 동맹을 강화하여 고구려에 대항하였다(493년).
무령왕
22담로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 강화
외교
중국 남조의 양과 국교를 맺고 문화 교류
무령왕릉
무령왕릉의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음
백제 성왕
사비 천도
성왕은 대외 진출이 쉬운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김(538년)
남부여
국호를 남부여로 고침
체제 정비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 정비하고, 수도를 5부로 지방을 5방으로 정비
한강 유역 일시 회복
신라와 힘을 합하여 이전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음(551년)
하지만 동맹국인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한강 유역의 땅을 신라에 빼앗김
관산성 전투 및 전사
성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554년)
백제 무왕
미륵사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백제 의자왕
신라 대야성 공격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
신라 당항성 공격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교통로를 끊기 위해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을 공격하였다.
백제 멸망
내부적으로 정치 질서의 문란과 지배층의 향락으로 국가적 일체감을 상실한 백제는, 결국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660년).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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