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말 ~ 5세기
고구려 – 신라
400년, 신라 해안에 나타나던 왜의 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머물렀다.
이때 고구려는 한반도 남부에까지 영향력 행사하였다. 이에 대한 내용이 광개토 대왕비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신라는 고구려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해 나갔다(호우명 그릇).
고구려 – 백제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한강 전 지역을 포함하여 죽령 일대에서 남양만을 연결하는 선까지 그 판도를 넓혔다.
고구려의 한강 유역 진출은 광개토 대왕릉비와 중원 고구려비에 잘 나타나 있다.
6세기
백제 성왕
551년 신라와 힘을 합하여 이전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았다.
하지만 동맹국인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한강 유역의 땅을 신라에 빼앗겼다.
554년 성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하였다.
신라 진흥왕
고구려의 지배 아래에 있던 한강 유역을 빼앗고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하였다.
특히, 한강 유역을 장악함으로써 중국과 직접 교역할 수 있는 유리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하였다.
새로 차지한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녕비)를 세웠다.
가야
신라와 백제의 다툼 속에서 후기 가야 연맹은 분열하여 금관가야가 신라 법흥왕에 멸망하였고(532년),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에 멸망하였다(562년).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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