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양성 운동의 대두
배경
3·1 운동 이후 일부 지식인들은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민족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했다.
내용
실력 양성 운동은 적자생존의 원리를 내세운 사회 진화론에 기반한 것으로, 이미 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 당시 국권 회복의 방법으로 제기된 바 있었다.
실력 양성 운동은 크게 민족 기업 설립과 물산 장려 운동 등을 통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과 문맹 퇴치 등을 통한 교육·문화 운동으로 이루어졌다.
한계
그러나 실력 양성 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쉽게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고, ‘선 실력 양성, 후 독립’을 내세웠지만 점차 실력 양성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한편, 실력 양성 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광수, 최린, 김성수 등은 일제의 이른바 ‘문화 통치’에 기대를 걸면서 조선 총독부 아래에 자치 정부나 자치 의회를 만들게 해 달라는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민족주의 세력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에 이용당하였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동아출판, 해냄에듀)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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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이론 –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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