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변화 (일제 강점기) – 기출 요약

식민지 도시 계획

조선 총독부는 서울에 도시 개수 계획을 도입하여 도시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 같은 전통 건물을 마구 헐어 내고, 총독부, 경성부 청사, 경성 역사 같은 관공서와 공공 시설, 공원, 학교 등을 잇따라 건립함에 따라 서울의 모습은 점차 식민지 도시 풍경으로 변해 갔다.

 

북촌과 남촌

1930년 무렵 서울에는 10만여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 일본인은 본정(현 충무로), 명치정(현 명동), 황금정(현 을지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리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의 일본인 거리는 남촌, 북쪽의 한국인 거리는 북촌으로 불렀다.

당시 남촌의 거리는 서울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서 관공서, 은행, 백화점, 상가, 도로 포장, 신호등, 가로등, 네온등 등 근대 도시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북촌의 거리는 그렇지 못하였다.

 

대중 문화

식민지 시기에 도시를 중심으로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신문, 잡지와 같은 매체에 새로운 대중문화가 소개되어 유행하였다.

이에 ‘모던 걸, 모던 보이’와 같이 서양식 옷차림에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사람이 등장하였다.

 

잡지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주택

도시에 사람이 몰리면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주택이 나타났다. 1920년대 이후에 상류층의 문화 주택, 중류층의 개량 한옥, 중⋅하류층의 영단 주택이 등장하였다.

서울 변두리에는 빈민이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동아출판, 해냄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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