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파와 벽파
사도 세자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시파와 벽파 간의 갈등을 경험한 정조는 영조 때보다 더욱 강력한 탕평책을 추진하였다.
시파와 벽파
시파는 사도 세자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죽음 자체는 지나치다는 입장이었고, 벽파는 사도 세자의 죽음은 당연하고 영조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
남인 계열 중용
정조는 그 동안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소론과 남인 계열도 중용하였다.
초계문신제와 규장각
정조는 붕당의 비대화를 막고 자신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하는 초계문신 제도를 실시하고, 규장각을 강력한 정치 기구로 육성하였다.
규장각
규장각은 본래 역대 왕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의 기능을 가지는 기구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의 기능과 문한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까지 부여하였다. |
장용영
정조는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하는 군사적 기반을 갖추었다.
장용영
정조 15년(1791)에 서울과 수원에 설치하였던 군영으로, 왕권 강화를 위한 군사적 기반이었다. |
수원 화성
정조는 수원으로 사도 세자의 묘를 옮기고 화성을 세워 정치적⋅군사적 기능을 부여함과 동시에, 상공인을 유치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적 도시로 육성하고자 하였다.
신해통공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이라고 한다.
편찬
정조 때에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등 수많은 책이 편찬되었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관련 문서
-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조선 후기
- 한국사 이론 전체
- 조선 후기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