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고3 5월 모의고사 한국사 1번 기출 해설

문제

1.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OO신문

무령왕릉 발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 공개

무령왕릉 지석을 판독하는 발굴단의 모습

국가유산청이 54년 만에 무령왕릉 발굴 현장에서 녹음된 음성 기록을 공개하였다. 무령왕릉은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긴 (가)이/가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국력 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1971년에 발굴되었다. 이번에 공개된 음성 기록에는 발굴단이 왕릉 내부에서 발견한 지석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이 (가)의 무령왕임을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백제 금동 대향로

독립문

수원 화성

단양 신라 적성비

팔만대장경판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되었다.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했다.

 

② 독립문

1896년 서재필에 의해 창립된 독립 협회는 첫 사업으로서 국민의 성금을 모아 영은문 자리에 자주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웠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수원 화성

조선 정조 시기 축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단양 신라 적성비

신라 진흥왕은 새로 차지한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녕비)를 세웠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팔만대장경판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한성 함락
  •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압박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나·제 동맹을 맺음
  •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됨
  • 475년,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함
  • 493년 나·제 동맹 강화
백제
무령왕
  •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 강화
  •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국교를 맺고 문화 교류
  • 백가의 난을 평정하고 왕권을 강화
  • 무령왕릉의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음

무령왕릉

무령왕릉 무령왕비 금제 관식

무령왕릉 지석

무령왕릉 석수

무령왕릉 금동 신발

무령왕릉 은잔

삼국의
과학 기술
  • 천문학

고대의 천문학은 천체 관측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신라에서는 7세기 선덕 여왕 때에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하였다.

신라 첨성대

 

  • 금속 기술
    • 백제

백제에서는 금속 기술이 발달하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낸 칠지도는 강철로 만들고 금으로 글씨를 상감해 새겨 넣은 우수한 제품이다. 칠지도는 백제 제철 기술의 우수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백제의 금속 공예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 주는 걸작품이다.

금동 대향로

무령왕비 금제 관식

칠지도

 

    • 신라

신라에서는 금 세공 기술이 발달하였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들은 순금으로 만든 것과 금으로 도금한 것이 있는데, 제작 기법이 뛰어나며 독특한 모양이 돋보인다.

 

신라 금관총 금관

신라 천마총 금관

독립 협회
  • 배경 – 아관파천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 파천이라고 한다.

  • 열강의 이권 침탈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국가의 자주성은 손상되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졌으며, 집권층은 친러적인 성향을 드러내었다.

외세의 침투가 계속되어 나라의 자주권이 크게 위협을 당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나라의 자주 독립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 독립 협회 창립

갑신정변의 주동자로 미국에 망명해 있던 서재필이 귀국하였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적 개혁 사상을 민중에 보급하고, 국민의 힘으로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자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 협회를 창립하였다(1896년).

  • 독립 협회 활동
    • 독립문과 독립관

독립 협회는 첫 사업으로서 국민의 성금을 모아 영은문 자리에 자주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수하는 등 국민의 자주 독립 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독립 협회는 독립관에서 교육과 산업 진흥, 자주독립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민중을 계몽하였다.

 

  • 자주 국권 운동
    • 만민 공동회

이 무렵, 러시아의 침략적 간섭은 여전하였다.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파견하고, 한러 은행 설립, 절영도 조차 등 이권 침탈을 시도하였다. 또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져 갔다.

이에 독립 협회 회원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 대회인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1898년).

만여 명의 시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종로 광장에서 열린 만민 공동회에서는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고, 대한의 자주 독립권을 지키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여 이를 정부에 건의하였다.

이후, 독립 협회는 수시로 만민 공동회를 열고, 외국의 내정 간섭과 이권 요구 및 토지 조차 요구 등에 대항하여 국권과 국익을 수호하려는 자주 국권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결국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철수시키고, 절영도 조차 요구를 철회하였다.

 

  • 자주 민권 운동
    • 국민 참정권 운동

자주 국권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이 증대되고 민권 의식이 고양되어 자유 민권 운동도 전개되었다.

나아가,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여 근대 개혁을 추진하려는 국민 참정권 운동도 전개하였다.

그 후, 독립 협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4천여 명의 회원을 가진 민중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하여, 의회 설립에 의한 국민 참정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독립 협회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하여 보수적 내각을 퇴진시키고, 박정양의 진보적 내각을 수립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 자강 개혁 운동
    • 관민 공동회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에 정부 대신들을 합석시켜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열강의 이권침탈 방지를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였다.

 

    • 헌의 6조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및 정치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았다.

관민 공동회의 헌의 6조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 것.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하여 시행할 것.

3. 국가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정부에 그 뜻을 물어서 중의에 따를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 중추원 관제 반포

독립 협회는 정부와 협상을 벌여 관선 의원과 민선 의원을 같은 수로 하는 의회식 중추원 관제를 반포하게 하여,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회가 설립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 독립 협회의 해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은 고종에게 독립 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고 모함하여, 박정양 내각을 무너뜨리고 독립 협회도 해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황국 협회를 이용하여 만민 공동회를 탄압하였고, 결국은 병력을 동원하여 민중들의 정치 활동을 봉쇄하였다.

황국 협회(皇國協會)

전국의 보부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보수 세력은 이들에게 만민 공동회가 열리는 곳에서 소란을 피우게 한 다음, 이를 빌미로 독립 협회를 해산하였다.

 

  • 독립 협회의 의의

독립 협회의 활동은 민중을 개화 운동과 결합시켜 근대적 민중 운동을 일으켰고, 민중에 의한 자주적인 근대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신라
진흥왕
  • 활발한 정복 활동을 전개하면서 삼국 간의 항쟁을 주도
  •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
  • 한강 유역 장악 후,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
  • 새로 차지한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녕비)를 세움
  • 562년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
  • 거칠부가 역사서 <국사>를 편찬
  • 황룡사 건립
  • 자신을 황제에 비겨 ‘태왕’ 또는 ‘짐’이라 하였으며, ‘개국·태창·홍제’ 등의 연호를 사용하여 자주 의식을 나타냄
  • 553년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하여 신주를 설치하였다.

신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창녕 진흥왕 순수비(또는 척경비)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5월 고3 학평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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