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1 5급 상황판단 선책형 17번 해설 – 조선 5대 궁 경복궁 논리퀴즈

개요

다음은 2011년 국가공무원 5급 상황판단영역 선책형 17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17.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甲사무관은 업무와 관련하여 조선의 5대 궁(宮)들을 답사하고자 한다. 다음을 근거로 판단할 때 답사 순서로서 옳은 것은?

<조선의 5대 궁(宮)>

경복궁 조선 건국과 함께 지어진 최초의 궁궐로서 개국 3년 만인 1395년 완공됐으며, 임진왜란(1592)으로 전소될 때까지 조선 최고(最古)의 법궁(法宮)이었다. 임진왜란 후 방치됐던 것을 1872년 흥선대원군이 복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는 등 다시 심하게 훼손됐다.
창덕궁 1405년 태종이 지은 조선 왕조의 두 번째 궁궐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1609년 중건된 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까지 조선 왕조의 법궁 역할을 했다.
창경궁 창덕궁과 인접해 하나의 궁궐처럼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탔고 광해군이 재건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만들어지면서 유원지로 변했고 창경원이라 불렸다.
덕수궁 고종 때 지은 서양식 건물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머물면서 정릉동행궁이라 불렸다. 선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정릉동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했고 광해군에 이어 인조도 짧은 기간 궁으로 사용했다. 고종은 일제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 숨을 거둘 때까지 경운궁에 머물렀다. 순종은 고종이 거처했던 당시 경운궁에 덕수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 후로 덕수궁이라 불렸다.
경희궁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광해군은 그 자리에 왕기가 서려 있다 해서 정원군을 몰아내고 1620년 궁궐을 세웠다. 경희궁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영조 36년(1760)에 지은 것이다. 1910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하였다.
<답사 조건>
ㄱ. 원래 개인 저택이었던 곳을 궁궐로 바꾼 궁들을 연이어 방문하되 현재의 궁 이름이 늦게 지어진 궁부터 방문한다.

ㄴ. 기존의 건물과 다른 양식의 건물이 세워졌거나, 외세에 의해 거주목적 외의 새로운 시설이 세워졌던 궁궐들은 연이어 방문한다.

ㄷ. 경복궁과 창덕궁은 연이어 방문하되 오랜 기간 법궁 역할을 한 순서대로 방문한다.

※ 법궁(法宮): 왕이 공식으로 활동하며 생활하는 궁궐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

 

① 창덕궁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② 창덕궁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경궁

③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

④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ㄱ. 원래 개인 저택이었던 곳을 궁궐로 바꾼 궁들을 연이어 방문하되 현재의 궁 이름이 늦게 지어진 궁부터 방문한다.

덕수궁 고종 때 지은 서양식 건물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머물면서 정릉동행궁이라 불렸다. 선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정릉동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했고 광해군에 이어 인조도 짧은 기간 궁으로 사용했다. 고종은 일제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 숨을 거둘 때까지 경운궁에 머물렀다. 순종은 고종이 거처했던 당시 경운궁에 덕수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 후로 덕수궁이라 불렸다.
경희궁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광해군은 그 자리에 왕기가 서려 있다 해서 정원군을 몰아내고 1620년 궁궐을 세웠다. 경희궁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영조 36년(1760)에 지은 것이다. 1910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하였다.

덕수궁 – 경희궁

ㄴ. 기존의 건물과 다른 양식의 건물이 세워졌거나, 외세에 의해 거주목적 외의 새로운 시설이 세워졌던 궁궐들은 연이어 방문한다.

경복궁 조선 건국과 함께 지어진 최초의 궁궐로서 개국 3년 만인 1395년 완공됐으며, 임진왜란(1592)으로 전소될 때까지 조선 최고(最古)의 법궁(法宮)이었다. 임진왜란 후 방치됐던 것을 1872년 흥선대원군이 복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는 등 다시 심하게 훼손됐다.
창경궁 창덕궁과 인접해 하나의 궁궐처럼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탔고 광해군이 재건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만들어지면서 유원지로 변했고 창경원이라 불렸다.
덕수궁 고종 때 지은 서양식 건물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머물면서 정릉동행궁이라 불렸다. 선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정릉동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했고 광해군에 이어 인조도 짧은 기간 궁으로 사용했다. 고종은 일제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 숨을 거둘 때까지 경운궁에 머물렀다. 순종은 고종이 거처했던 당시 경운궁에 덕수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 후로 덕수궁이라 불렸다.
경희궁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광해군은 그 자리에 왕기가 서려 있다 해서 정원군을 몰아내고 1620년 궁궐을 세웠다. 경희궁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영조 36년(1760)에 지은 것이다. 1910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하였다.

(덕수궁 – 경희궁) 순서를 지키되, 경복궁 ~ 경희궁을 방문한다.

 

ㄷ. 경복궁과 창덕궁은 연이어 방문하되 오랜 기간 법궁 역할을 한 순서대로 방문한다.

경복궁 조선 건국과 함께 지어진 최초의 궁궐로서 개국 3년 만인 1395년 완공됐으며, 임진왜란(1592)으로 전소될 때까지 조선 최고(最古)의 법궁(法宮)이었다. 임진왜란 후 방치됐던 것을 1872년 흥선대원군이 복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는 등 다시 심하게 훼손됐다.
창덕궁 1405년 태종이 지은 조선 왕조의 두 번째 궁궐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1609년 중건된 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까지 조선 왕조의 법궁 역할을 했다.

경복궁 법궁 기간: 1395년 ~ 1592년, 약 200년

창덕궁 법궁 기간: 1609년 ~ 1872년, 약 260년

창덕궁 – 경복궁 순서로 방문한다.

 

창덕궁 – 경복궁 – (덕수궁 – 경희궁) – 창경궁 순서로 방문한다.

 

정답은 ③번이다.

2011 5급 PSAT 상황판단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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