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2 5급 언어논리 인책형 6번 해설 – 본관 본관제 추론

개요

다음은 2012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인책형 6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6. 다음 글에서 추론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민족은 고유한 성(姓)과 더불어 성씨 앞에 특정 지역의 명칭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이를 본관이라고 하는데, 본관의 사용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전기 본관제(本貫制)의 기능은 무엇보다 민(民)에 대한 통제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민의 거주지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은 물론 신분, 계층, 역(役) 등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운영원리로 볼 때 지역 간 또는 지역 내의 위계적인 지배방식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권력의 의사가 개별 민에게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방식이 아니라 향촌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 관철되는 방식이었다.

12세기부터 향촌사회에서 향촌민이 몰락하여 계급분화가 심화되고 유망(流亡) 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면서, 본관제를 통한 거주지 통제정책은 느슨해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여 고려정부는 민이 거주하고 있는 현재의 거주지를 인정하고 그 거주지의 민을 호적에 올려 수취를 도모하는 정책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역 간 위계를 두는 지배방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향·소·부곡과 같은 특수행정구역이 감소되었으며, 부곡민도 일반 군현민과 서로 교류하고 이동할 정도로 군현민과의 신분적인 차이가 미미해졌다.

향촌사회의 변동은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먼저 향리층이 이전처럼 향촌질서를 주도하기 어려워졌다. 향리층은 본관을 떠나 이동하였고, 토착적 성격이 희박해진 속성(續姓)이 증가하였다. 이들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주하거나 외향(外鄕)*이나 처향(妻鄕)**에서 지역 기반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향리층은 아전층인 이족(吏族)과 재지품관층인 사족(士族)으로 분화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사족은 지방관과 함께 향촌사회 지배의 일부를 담당했다. 또한 본관이 점차 관념적인 혈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고, 동성(同姓)은 본래 동본(同本)이었다는 관념이 커지게 되었다. 동성동본 관념은 성관(姓貫)의 통합을 촉진시켰고, 군소 성관들이 본래의 본관을 같은 성(姓)의 유력 본관에 따라 고치는 현상을 확대시켰다.

본관제의 성격이 변화함에 따라, 죄지은 자를 자기 본관으로 돌려보내는 귀향형(歸鄕刑)이나 특정한 역에 편입시키는 충상호형(充常戶刑)과 같은 법제는 폐지되었다. 그러한 법제는 본관제의 기능과 관련해서만 유의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외향(外鄕): 어머니의 고향
**처향(妻鄕): 아내의 고향

① 향촌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족은 향촌사회 지배의 일부를 담당했다.

② 이족과 사족의 분화는 동성동본 관념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③ 귀향형이나 충상호형은 민에 대한 통제정책, 위계적인 지역 지배와 관련된 것이었다.

④ 향촌민의 몰락과 유망 등 사회적 변동으로 인해 본관제의 통제적 성격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⑤ 12세기 이후 향·소·부곡과 같은 특수행정구역은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며, 부곡민과 일반 군현민의 신분적 차이도 줄어들었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향촌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족은 향촌사회 지배의 일부를 담당했다.

향촌사회의 변동은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사족은 지방관과 함께 향촌사회 지배의 일부를 담당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이족과 사족의 분화는 동성동본 관념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12세기부터 향촌사회에서 향촌민이 몰락하여 계급분화가 심화되고 유망(流亡) 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면서, 본관제를 통한 거주지 통제정책은 느슨해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여 고려정부는 민이 거주하고 있는 현재의 거주지를 인정하고 그 거주지의 민을 호적에 올려 수취를 도모하는 정책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역 간 위계를 두는 지배방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향촌사회의 변동은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먼저 향리층이 이전처럼 향촌질서를 주도하기 어려워졌다. 향리층은 본관을 떠나 이동하였고, 토착적 성격이 희박해진 속성(續姓)이 증가하였다.

향리층은 아전층인 이족(吏族)과 재지품관층인 사족(士族)으로 분화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사족은 지방관과 함께 향촌사회 지배의 일부를 담당했다.

본관이 점차 관념적인 혈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고, 동성(同姓)은 본래 동본(同本)이었다는 관념이 커지게 되었다.

이족과 사족의 분화와 동성동본 관념이 발생하는 원인과는 관계가 없다.

12세기부터 향촌사회의 변동으로 본관제의 본래 기능을 잃기 시작했고, 본관이 점차 관념적인 혈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어 동성동본 관념이 발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귀향형이나 충상호형은 민에 대한 통제정책, 위계적인 지역 지배와 관련된 것이었다.

고려전기 본관제(本貫制)의 기능은 무엇보다 민(民)에 대한 통제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운영원리로 볼 때 지역 간 또는 지역 내의 위계적인 지배방식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본관제의 성격이 변화함에 따라, 죄지은 자를 자기 본관으로 돌려보내는 귀향형(歸鄕刑)이나 특정한 역에 편입시키는 충상호형(充常戶刑)과 같은 법제는 폐지되었다. 그러한 법제는 본관제의 기능과 관련해서만 유의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향촌민의 몰락과 유망 등 사회적 변동으로 인해 본관제의 통제적 성격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12세기부터 향촌사회에서 향촌민이 몰락하여 계급분화가 심화되고 유망(流亡) 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면서, 본관제를 통한 거주지 통제정책은 느슨해져 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12세기 이후 향·소·부곡과 같은 특수행정구역은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며, 부곡민과 일반 군현민의 신분적 차이도 줄어들었다.

향·소·부곡과 같은 특수행정구역이 감소되었으며, 부곡민도 일반 군현민과 서로 교류하고 이동할 정도로 군현민과의 신분적인 차이가 미미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②번이다.

2012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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