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3 민경채 언어논리 인책형 1번 해설 – 의학 납약 고려 현종 혜민국

개요

다음은 2013년 국가공무원 민간경력자(민경채) 언어논리영역 인책형 1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1. 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중세 동아시아 의학의 특징은 강력한 중앙권력의 주도 아래 통치수단의 방편으로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권력자들은 최상의 의료 인력과 물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의료를 충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삼았다. 이러한 특징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나 중국의 황제는 조공국에게 약재를 하사함으로써 위세와 권위를 과시했다. 고려의 국왕 또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의료를 신민 지배의 한 수단으로 삼았다. 국왕은 일년 중 정해진 날에 종4품 이상의 신료에게 약재를 내렸는데, 이를 납약(臘藥)이라 하였다. 납약은 중세 국가에서 약재가 일종의 위세품(威勢品)으로 작용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역병이 유행하면 고려의 국왕은 이에 상응하는 약재를 분배하였다. 1018년 개경에 유행성 열병인 장역(瘴疫)이 유행하자 현종은 관의(官醫)에게 병에 걸린 문무백관의 치료를 명령하고 필요한 약재를 하사하였다. 하층 신민에 대해서는 혜민국과 구제도감 등 다양한 의료 기관을 설립하여 살피게 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빈민들의 희생이 컸기에 소극적이나마 빈민을 위한 의료대책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10년과 1348년 전염병이 유행하였을 때에는 개경 시내에 빈민의 주검이 많이 방치되어 있었고, 이는 전염병이 유행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 이들 빈민 환자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서 빈민의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혜민국은 상설 기관이 아니라 전염병 유행과 같은 비상시에 주로 기능하는 임시 기관이었다. 애민(愛民)정책 아래 만들어진 이들 기관의 실상은 치료보다는 통치를 위한 격리를 목적으로 하였다.

① 고려는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혜민국을 설치하였다.

② 고려 국왕은 병든 문무백관의 치료를 위해 납약을 하사하였다.

③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고려시대 전염병의 발병률 감소에 기여하였다.

④ 중세 동아시아 의학은 상·하층 신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하였다.

⑤ 중세 동아시아의 권력자는 의료 인력과 약재를 독점하여 신료의 충성을 유도하였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고려는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혜민국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혜민국은 상설 기관이 아니라 전염병 유행과 같은 비상시에 주로 기능하는 임시 기관이었다. 

혜민국은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설치되지 않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고려 국왕은 병든 문무백관의 치료를 위해 납약을 하사하였다.

고려의 국왕 또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의료를 신민 지배의 한 수단으로 삼았다. 국왕은 일년 중 정해진 날에 종4품 이상의 신료에게 약재를 내렸는데, 이를 납약(臘藥)이라 하였다. 납약은 중세 국가에서 약재가 일종의 위세품(威勢品)으로 작용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역병이 유행하면 고려의 국왕은 이에 상응하는 약재를 분배하였다. 1018년 개경에 유행성 열병인 장역(瘴疫)이 유행하자 현종은 관의(官醫)에게 병에 걸린 문무백관의 치료를 명령하고 필요한 약재를 하사하였다.

납약은 고려 국왕이 통치수단의 한 방편으로, 일년 중 정해진 날에 종4품 이상의 신료에게 약재를 내려 충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삼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고려 현종이 병든 문무백관의 채료를 위해 약재를 하사한 것은 역병이 유행했을 때였고, 일년 중 정해진 날에 종4품 이상의 신료에게 약재를 내린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납약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고려시대 전염병의 발병률 감소에 기여하였다.

중세 동아시아 의학의 특징은 강력한 중앙권력의 주도 아래 통치수단의 방편으로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권력자들은 최상의 의료 인력과 물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의료를 충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삼았다. 이러한 특징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나 중국의 황제는 조공국에게 약재를 하사함으로써 위세와 권위를 과시했다. 고려의 국왕 또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의료를 신민 지배의 한 수단으로 삼았다.

고려의 국왕은 의료를 통치수단의 방편으로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신민 지배의 한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것이 고려시대 전염병의 발병률 감소에 기여하였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중세 동아시아 의학은 상·하층 신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하였다.

중세 동아시아 의학은 상·하층 신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권력자들이 최상의 의료 인력과 물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조공국 또는 신료에서 약재를 내려 충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삼거나, 통치를 위한 격리를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중세 동아시아의 권력자는 의료 인력과 약재를 독점하여 신료의 충성을 유도하였다.

중세 동아시아 의학의 특징은 강력한 중앙권력의 주도 아래 통치수단의 방편으로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권력자들은 최상의 의료 인력과 물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의료를 충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삼았다.

고려의 국왕은 일년 중 정해진 날에 종4품 이상의 신료에게 약재를 내렸는데, 이를 납약(臘藥)이라 하였다. 납약은 중세 국가에서 약재가 일종의 위세품(威勢品)으로 작용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2013 민경채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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