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24 국가직 7급 언어논리 사책형 8번 해설 – 좋아요 콘텐츠

개요

다음은 2024년도 국가직 7급 PSAT 언어논리영역 사책형 8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8. 다음 글의 (가)와 (나)에 들어갈 말을 짝지은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전시하고 이에 대한 주변인의 반응을 기다린다. 특히 전시의 공간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전시물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시된 삶에 공감하는 익명의 사람들은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좋아요’의 수가 많을수록 전시된 콘텐츠의 가치가 높아진다. 이제 얼마나 많은 수의 ‘좋아요’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누군가의 ‘좋아요’를 좇게 된다. ‘좋아요’는 전시된 콘텐츠에 대한 공감의 표현 방식이었지만, 어느 순간 관계가 역전되어 ‘좋아요’를 얻기 위해 콘텐츠를 가상 공간에 전시하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좋아요’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 관계의 역전은 문제를 일으킨다. ‘좋아요’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에 존재하는 ‘나’가 사라지고 만다. 타인이 좋아할 만한 일상과 콘텐츠를 선별하거나 심지어 만들어서라도 전시하기 때문이다. (가). 타인의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내가 사라지고 마는 아이러니를 직면하는 순간이다.

‘좋아요’의 공동체 안에서는 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동체는 ‘좋아요’를 매개로 모인 서로 ‘같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같은 것을 좋아하고 긍정하는 ‘좋아요’의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다름’은 점차 사라진다. (나). 이제 공동체에서 그러한 타자를 환대하거나 그의 말을 경청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다름’은 ‘좋아요’가 용납하지 않는 별개의 언어가 된다.

‘좋아요’는 그 특유의 긍정성 덕분에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좋아요’에 함몰되는 순간 나와 타자를 동시에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좋아요’를 거부하는 타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좋아요’가 축출한 ‘다름’의 언어를 되찾아오기 시작할 때 ‘좋아요’의 아이러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의 나와 다른 전시용 나를 제작하는 셈이다
(나): ‘좋아요’를 거부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불편한 대상이자 배제의 대상이 된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의 나와 다른 전시용 나를 제작하는 셈이다
(나): ‘좋아요’의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갈등이나 의견 대립도 발생하지 않는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나의 내면과 사생활까지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한다
(나): ‘좋아요’를 거부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불편한 대상이자 배제의 대상이 된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나의 내면과 사생활까지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한다
(나): ‘좋아요’의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갈등이나 의견 대립도 발생하지 않는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의 내가 가진 매력적 콘텐츠를 더욱 많이 발굴하는 것이다
(나): ‘좋아요’의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갈등이나 의견 대립도 발생하지 않는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의 나와 다른 전시용 나를 제작하는 셈이다

이 관계의 역전은 문제를 일으킨다. ‘좋아요’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에 존재하는 ‘나’가 사라지고 만다. 타인이 좋아할 만한 일상과 콘텐츠를 선별하거나 심지어 만들어서라도 전시하기 때문이다. (가). 타인의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내가 사라지고 마는 아이러니를 직면하는 순간이다.

‘좋아요’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나’가 사라지고, 타인이 좋아할 만한 일상과 콘텐츠를 선별하거나 심지어 만들어서라도 전시한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나의 내면과 사생활까지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한다

사생활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가):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의 내가 가진 매력적 콘텐츠를 더욱 많이 발굴하는 것이다

이 관계의 역전은 문제를 일으킨다. ‘좋아요’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에 존재하는 ‘나’가 사라지고 만다. 타인이 좋아할 만한 일상과 콘텐츠를 선별하거나 심지어 만들어서라도 전시하기 때문이다. (가). 타인의 ‘좋아요’를 얻기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내가 사라지고 마는 아이러니를 직면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나): ‘좋아요’를 거부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불편한 대상이자 배제의 대상이 된다

‘좋아요’의 공동체 안에서는 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동체는 ‘좋아요’를 매개로 모인 서로 ‘같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같은 것을 좋아하고 긍정하는 ‘좋아요’의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다름’은 점차 사라진다. (나). 이제 공동체에서 그러한 타자를 환대하거나 그의 말을 경청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다름’은 ‘좋아요’가 용납하지 않는 별개의 언어가 된다.

‘좋아요’는 그 특유의 긍정성 덕분에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좋아요’에 함몰되는 순간 나와 타자를 동시에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좋아요’를 거부하는 타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좋아요’가 축출한 ‘다름’의 언어를 되찾아오기 시작할 때 ‘좋아요’의 아이러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나): ‘좋아요’의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갈등이나 의견 대립도 발생하지 않는다

‘좋아요’의 공동체 안에서는 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동체는 ‘좋아요’를 매개로 모인 서로 ‘같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같은 것을 좋아하고 긍정하는 ‘좋아요’의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다름’은 점차 사라진다. (나). 이제 공동체에서 그러한 타자를 환대하거나 그의 말을 경청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다름’은 ‘좋아요’가 용납하지 않는 별개의 언어가 된다.

‘좋아요’는 그 특유의 긍정성 덕분에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좋아요’에 함몰되는 순간 나와 타자를 동시에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좋아요’를 거부하는 타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좋아요’가 축출한 ‘다름’의 언어를 되찾아오기 시작할 때 ‘좋아요’의 아이러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좋아요’의 공동체에서 어떠한 갈등이나 의견 대립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에 들어갈 내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나)에는 ‘다름’ 또는 ‘타자’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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