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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간도
조선과 청은 1712년 백두산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양국의 경계를 정하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늘어나자 간도 귀속 문제가 발생했다.
대한 제국은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임명하여 간도에 파견한 후, 한인들을 보호하게 하고 간도를 함경도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하였다(1903년).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은 1907년 간도에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909년 청과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만주의 철도 부설권, 탄광 개발권 등을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강진
강화도
고려 – 몽골 전쟁 당시 강화 천도. 고려궁궐 터.
병자호란 때, 왕자외 비빈이 강화도로 먼저 피난하였으나 인조는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양명학의 학문적 체계를 수립한 정제두는 강화도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여 이광사 등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강화학파).
도교 행사로서, 참성단에서 일월성신에 제사 지내는 초제가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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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 |
선죽교 –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살해를 당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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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1885년).
경주
포석정 – 신라 시대에 왕과 신하가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공주
ㄴ
논산
ㄷ
대구
독도
러일전쟁 중 일본은 한일 의정서를 빌미로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하였다.
ㅂ
부산
부여
백제 유적 – 낙화암
ㅅ
서울
경회루 – 경복궁의 연못에 있는 경회루는 다른 나라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열던 곳이다.
백제 유적 – 몽촌토성, 풍납토성, 송파 석촌동 돌무지무덤
수원
수원 화성 – 조선 정조의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인 현륭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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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안동
영주
용인
울산
원산
의주
익산
ㅈ
제주
삼별초는 제주도에서 끝까지 몽골에 저항하였다.
진도
배중손이 이끈 삼별초는 장기전을 펴기 위하여 진도로 옮겨 용장성을 쌓고 저항을 계속하였다.
진주
임진왜란 당시, 진주에서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물리쳤다(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조선 후기,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1923년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ㅍ
평양
ㅎ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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