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개항 이후, 일본 상인에 의한 곡물의 일본 유출이 늘어나고, 흉년이 들면서 곡물 가격의 폭등 현상이 나타났다.
방곡령
1889년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흉년으로 인해 방곡령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조⋅일 통상 장정의 규정을 구실로 통고받은 날부터 수출 금지 일자까지 1개월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방곡령의 취소를 요구하였다.
방곡령
흉년 등으로 쌀이 부족해질 경우, 지방관이 쌀의 수출을 금지하던 명령으로 조⋅일 통상 장정에는 1개월 이전에 일본 상인에게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
결과
결국 조선은 방곡령을 철회하였으며, 일본 상인들은 방곡령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였고,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관련 문서
- 방곡령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방곡령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방곡령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 한국사 이론 전체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