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임오군란 – 기출 요약

배경

차별 대우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경제 악화

정부의 재정 지출이 늘어 백성의 세금 부담이 커졌고, 일본으로 곡물이 수출되면서 쌀값도 크게 올랐다. 이로 인해 도시 하층민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임오군란

전개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년).

이들은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였다.

한성 주변의 도시 하층민까지 합세하면서 군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군란 세력은 경복궁까지 쳐들어가 민씨 일파를 처단하고 민씨 일파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왕비를 찾았으나 왕비는 이미 피신한 상황이었다.

 

흥선 대원군 재집권

고종이 흥선 대원군에게 군란의 수습을 맡기면서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개화 정책은 중단되었다.

 

청의 개입

민씨 세력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이 흥선 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로 지목하여 강제로 데려갔다

 

민씨 세력 재집권

민씨 세력은 다시 권력을 잡았다.

다시 집권하게 된 민씨 일파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청 정책으로 기울어졌다.

 

제물포 조약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으며,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1882년).

 

청의 내정 간섭

청은 이후 조선의 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였다.

곧, 위안 스카이 등이 지휘하는 군대를 상주시켜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과 외교 문제에 깊이 간여하였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또, 조선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체결로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허용하게 되고, 경제적 침략을 받게 되었다.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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