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운동
배경
갑오개혁 때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으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차별하였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
기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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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형평사
이에,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더 나아가 조선 형평사는 다른 분야의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면서 파업, 소작 쟁의 등에 참가하는 등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구호
공평은 사회의 근본,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자!
참고: 국사 편찬 위원회,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 비상교육, 동아출판, 해냄에듀)
관련 문서
- 형평 운동 (일제 강점기) 관련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 모음
- 형평 운동 (일제 강점기) 관련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출 모음
- 형평 운동 (일제 강점기) 관련 공무원 시험 기출 모음
- 한국사 이론 – 일제 강점기
- 한국사 이론 전체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