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고3 5월 모의고사 한국사 2번 기출 해설

문제

2.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이 그 유민을 모아 (가)을/를 세우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조영의 뒤를 이은 왕들이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중략)… (가)은/는 동북 지역에서 수백 년간 위세를 떨쳤습니다. 해동성국이라 불렸는데, 제도와 문물이 아름답고 융성하여 그렇게 일컬어질 만합니다.

① 지계를 발급하였다.

② 도병마사를 설치하였다.

③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④ 화백 회의를 운영하였다.

⑤ 5경 15부 62주를 두었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698년 대조영은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건국했다.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① 지계를 발급하였다.

1897년 수립된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도병마사를 설치하였다.

도병마사는 고려의 중앙 정치 조직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고려 말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조선 초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화백 회의를 운영하였다.

화백 회의는 신라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귀족 회의체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5경 15부 62주를 두었다.

발해의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발해 건국
대조영
  • 698년,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발해 건국
  • 국호를 ‘진(震)’이라 하고, 당나라에서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
  •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또는 고려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 문화의 유사성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
  • 천통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발해 선왕
  • 9세기 전반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
  • 남쪽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
  •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부름
  • 건흥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발해 통치 체제
  • 중앙 정치 조직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
  •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 설치
  •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
  •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둠
  • 서적 관리, 주요 문서 작성 등을 위해 문적원을 설치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배경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 대한 제국 수립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환구단(원구단)

 

  • 광무개혁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 정치 개혁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 경제 개혁
    • 양전 사업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 식산흥업 정책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 금본위 지폐 시도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 내장원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 전환국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 사회 개혁
    • 실업 교육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 군사 개혁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 외교 활동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고려
중앙 정치 조직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에 마련한 2성 6부제를 토대로 하였다. 고려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하였다.

 

중서문하성

  • 중서문하성은 고려의 최고 관서로서,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 중서문하성은 재신과 낭사로 구성되었다. 재신은 국가의 정책을 심의하고, 낭사는 정치의 잘못을 비판하였다.
  • 낭사는 어사대의 관원과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 재신은 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상서성

  • 상서성은 실제 정무를 나누어 담당하는 6부를 두고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였다.
  • 6부 – 6부에는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중추원

  • 송의 제도를 본따 만든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다.
  • 군사 기밀을 담당하면서 재신과 함께 국정을 총괄하는 추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선으로 구성되었다.
  • 추밀은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삼사

  • 삼사는 송나라와 달리, 단순히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만 맡았다.

 

어사대

  •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대간

  • 대간은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된다.
  • 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과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보내는 봉박, 관리의 임명과 법령의 개정이나 폐지 등에 동의하는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다.

 

도병마사

  • 도병마사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였다.
  •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임시 기구였으나,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개편되면서 구성원이 확대되고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 사항을 담당하는 최고 정무 기구로 발전하였다.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또한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식목도감

  • 식목도감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 식목도감은 임시 기구로서 국내 정치에 관한 법의 제정이나 각종 시행 규정을 다루던 회의 기구였다.
  •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또한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왜구의 침입 공민왕 때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을 받았다.

최영, 이성계 등이 나서서 왜구를 토벌하였고, 최무선은 화포를 사용하여 왜구를 격퇴했다.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의 무인 세력이 성장했다.

조선 세종
  • 집현전 설치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 의정부 서사제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 쓰시마섬 정벌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 4군 6진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 계해약조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 지도·지리지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 삼강행실도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 과학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 칠정산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 갑인자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 총편등록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 농사직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 의학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 부민고소금지법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하였다.

삼국
통치
체제
  • 고구려

제가 회의 – 고구려 초기에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귀족 회의

대대로(또는 막리지)가 국정을 총괄

지방의 여러 성에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둠

 

  • 백제

정사암 회의 – 재상의 선출 등 국가의 주요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하던 백제의 귀족 회의

6좌평제와 16관등제

상좌평이 국정을 총괄

무령왕 때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

 

  • 신라

화백 회의 – 신라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귀족 회의체

17관등제

골품 제도 – 신라인의 일상 생활까지 규제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5월 고3 학평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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