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1 3월 모의고사 한국사 14번 기출 해설

문제

14.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일제 식민 통치의 전개

② 제가 회의의 구성과 역할

③ 군국기무처의 설치와 개혁

④ 서원의 설립과 향약의 보급

⑤ 전시과 제도의 시행과 변천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조선 전기 훈구 세력과 대립했던 정치 세력은 ‘사림’이다.

15세기 중반 이후, 중소 지주적인 배경을 가지고 성리학에 투철한 지방 사족이 영남과 기호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을 사림이라 부른다.

향촌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굳히던 사림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에 참여함으로써 훈구 세력을 견제하였다.

김종직과 그 문인이 성종 때에 중앙에 진출하면서 사림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① 일제 식민 통치의 전개

일제 식민 통치는 조선이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된 이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제가 회의의 구성과 역할

제가 회의는 고구려의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귀족 회의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군국기무처의 설치와 개혁

군국기무처의 설치는 조선 고종 때 1차 갑오개혁을 실시할 때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서원의 설립과 향약의 보급

향약은 조선 시대 전통적 공동 조직과 미풍양속을 계승하면서,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를 가미하여 교화 및 질서 유지에 알맞게 구성한 것이다.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16세기 이후 각 지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서원은 사림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었다.

사림 세력은 서원과 향약을 통하여 향촌 사회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전시과 제도의 시행과 변천

전시과 제도는 고려의 토지 제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훈구와 사림
  • 훈구

훈구 세력은 세조의 집권 이후에 공신으로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층이었다.

이들은 조선 초기에 관학파의 학풍을 계승하여 문물 제도 정비에 크게 기여하였다.

훈구 세력은 중앙 집권 체제를 강조하였다.

또한 중앙의 권력을 바탕으로 향촌 사회를 장악하려 하였다.

 

  • 사림

15세기 중반 이후, 중소 지주적인 배경을 가지고 성리학에 투철한 지방 사족이 영남과 기호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을 사림이라 부른다.

이들은 훈구 세력의 사장적 학풍과는 달리 경학을 중시하고, 인간의 심성을 연구하는 성리학을 학문의 주류로 삼았다.

16세기에는 사림이 소학과 주자가례의 보급과 실천에 힘쓰면서 이륜행실도와 동몽수지 등을 간행하여 보급하였다.

또한 사림은 향촌 자치를 내세우며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강조하였다.

 

  • 사림의 등장

향촌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굳히던 사림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에 참여함으로써 훈구 세력을 견제하였다.

김종직과 그 문인이 성종 때에 중앙에 진출하면서 사림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사림 세력은 서원과 향약을 통하여 향촌 사회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조선 전기
향약과 서원
  • 향약

지방 사족은 향촌 사회를 그들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 향약 조직을 만들었다. 향약은 중종 때 조광조가 처음 시행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본래 향촌에서는 마을 단위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 풍습이 있었다. 향약은 이러한 전통적 공동 조직과 미풍양속을 계승하면서,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를 가미하여 교화 및 질서 유지에 알맞게 구성한 것이다.

향약은 조선 사회의 풍속 교화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향촌 사회의 질서 유지와 함께 치안까지 담당하는 등 향촌의 자치 기능을 맡았다. 향약의 보급으로 지방 사림의 지위는 강화되었으나, 지방 유력자가 주민을 위협, 수탈하는 배경을 제공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향약의 4대 절목

1. 덕업을 서로 권함(德業相勸).

2. 과실을 서로 규제함(過失相規).

3. 예속으로 서로 사귐(禮俗相交).

4. 환난을 서로 도와 줌(患難相恤).

기출 자료

해주 향약 입약 범례문

무릇, 뒤에 향약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먼저 규약문을 보여 몇 달 동안 실행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헤아려 본 뒤에 가입하기를 청하게 한다. 가입을 청하는 자는 반드시 단자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뜻을 자세히 적어서 모임이 있을 때에 진술하고, 사람을 시켜 약정(約正)에게 바치면 약정은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좋다고 한 다음에야 글로 답하고, 다음 모임에 참여하게 한다.

〈율곡전서〉

 

  • 서원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백운동 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조선 명종 이후 소수 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6세기 이후 각 지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서원도 향약과 함께 사림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었다. 서원은 유교 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사림을 결집,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구려
  • 기원전 37, 주몽이 졸본에서 건국
  •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림
  • 제가 회의 –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귀족 회의
  • 서옥제 –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
  • 동맹 – 10월에 국동대혈에서 열리는 추수감사제인 제천 행사
제1차
갑오개혁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교정청

조선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주로 조세 개혁을 결정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군국기무처

입법권을 가진 초정부적인 개혁 추진 기구이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개국 기원 사용
      • 기존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
      • 궁내부를 신설하여 왕실 사무와 행정 사무 분리
      • 과거제 폐지
    • 경제
      • 탁지아문으로 재정의 일원화
      • 조세의 금납화
      • 도량형의 개정 통일
      • 은본위 화폐 제도를 채택
    • 사회
      • 공·사노비 제도를 혁파하고 신분제 폐지
      • 과부의 재혼 허용
      • 조혼 금지
고려
전시과 제도와
토지 소유
역분전 – 태조 때에 역분전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은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준 토지였다.

시정 전시과 – 시정 전시과 제도는 경종 때에 공복 제도와 역분전 제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관직의 높고 낮음과 함께 인품을 반영하여 토지를 지급하였다.

개정 전시과 – 목종 때 기존 전시과를 개정하여 관직만을 고려하여 지급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지급량도 재조정하였다.

경정 전시과 – 관료에게 줄 토지가 부족하게 되자 문종 때에 현직 관료에게만 주도록 다시 조정하였다.

전시과 제도의 내용 –  문무 관리로부터 군인, 한인에 이르기까지 18등급으로 나누어 곡물을 수취할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시지를 주었다.

수조권만 지급 – 지급된 토지는 소유권이 아닌 수조권만 가지는 토지였다.

반납 – 관직 복무와 직역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었으므로 토지를 받은 자가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날 때에는 토지를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였다.

  • 공음전 – 문벌 귀족의 세습적인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것은 공음전이었다. 공음전은 5품 이상의 관료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데,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다. 이는 음서제와 함께 귀족의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었다.
  • 한인전 – 한인전은 6품 이하 하급 관료의 자제로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지급한 토지인데, 이것은 관인 신분의 세습을 위한 것이다.
  • 군인전 – 군인전은 군역의 대가로 주는 토지로, 군역이 세습됨에 따라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 구분전 – 하급 관료와 군인의 유가족에게는 구분전을 지급하여 생활 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 녹과전 – 점차 귀족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세습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전시과 제도가 원칙대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 민전 – 민전은 매매, 상속, 기증, 임대 등이 가능한 사유지로서, 귀족이나 일반 농민의 상속, 매매, 개간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3월 고1 학평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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