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4. 밑줄 친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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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예송을 전개하였다.
② 인조반정을 주도하였다.
③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
④ 이봉창이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⑤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김구가 의열 투쟁을 위해 조직한 단체는 ‘한인 애국단’이다.
① 예송을 전개하였다.
예송은 조선 현종 시기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발생한 두 차례의 정치 사건이다.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인조반정을 주도하였다.
서인이 인조반정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
박정희 정부 시기 새마을 운동이 추진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이봉창이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한인 애국단 소속 이봉창은 1932년 일본 도쿄에서 천황이 타고 가는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1946년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좌우 합작 위원회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벌 등에 대한 좌우익의 의견을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1919년 11월 신흥 무관 학교 출신인 김원봉, 윤세주 등은 만주 지린성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의열단원들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 직접 혁명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의열단은 일제의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5파괴, 7가살)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김익상 – 1921년 조선 총독부에 폭탄 투척 김상옥 – 1923년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 나석주 – 1926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 투척
의열단은 1920년대 후반부터 개인 폭력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조직적인 항일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의열단원들은 중국 황푸 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정규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30년대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의열단은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중국 관내 대부분의 민족 운동 단체를 통합한 민족 혁명당 결성(1935년)을 주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민 대표 회의 이후 침체를 겪었다. 또한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이 나빠지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어려워졌다. 김구는 1931년 임시 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이봉창은 일본 도쿄에서 천황이 타고 가는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중국 상하이를 침략하였다(상하이 사변).
1932년 상하이 사변에서 승리한 일제는 중국 사아이 훙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이때 윤봉길이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요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하였다.
한국 애국단의 의거로 인해 중국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크게 호전되었으며,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중국 영토 내에서 한국광복군이 조직되는 토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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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붕당 정치 전개 |
붕당 정치 초기에는 동인이 우세한 가운데 정국이 운영되었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온건파인 남인과 급진파인 북인으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북인이 집권하여 광해군 때까지 정국을 주도하였다.
광해군의 지지 세력인 북인은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려 하였다. 또한 북인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취하는 등 성리학적 의리 명분론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이는 서인과 남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광해군의 영창 대군 살해와 인목 대비 유폐 등으로 결국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과 북인은 몰락하였다. 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을 운영해 나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학문적 입장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상호 비판적인 공존 체제를 이루어 나갔다.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각 학파에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물이 산림이란 이름으로 재야에서 그 여론을 주재하였다.
현종 때까지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가 유지된 채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659년 기해예송. 기년복 1년. 효종의 상을 당하여 자의 대비의 복제가 문제 되었는데, 서인은 1년설을, 남인은 3년설을 주장하여 1년설이 채택되었다.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674년 갑인예송. 기년복 1년. 효종비의 상을 계기로 또 자의 대비의 복제가 문제 되었는데, 서인은 9개월설을, 남인은 1년설을 주장하여 1년설이 채택되었다.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약화되고 남인 중심의 정국이 운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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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60년 사이 평균 출산율은 6.3명에 달한 반면, 사망률은 점차 낮아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60년대에 들어와 정부는 가족 계획 사업을 시작하여 출산율을 낮추려 노력하였다. 여기에 여성의 혼인 연령 상승, 자녀 교육비 증가, 자식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피임 확산 등으로 출산율은 점점 낮아졌다.
1960년대에 들어와 경제 개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우리 나라는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정부는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대규모 도시 정비 사업을 진행하였다. 빈민들은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쫓겨났으며, 빈민촌이 있던 곳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광주 대단지 사건 등이 일어났다.
개발 제한 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와 자연환경의 보전을 위하여 도시개발을 제한하도록 지정한 구역을 말한다.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71년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다수확 품종의 개발로 쌀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농민은 원예, 축산 등 영농의 다각화를 시작하였다.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함께 정부는 농촌의 근대화와 생활 향상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한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농⋅어민들의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사업이 이루어져, 농⋅어촌의 생활 수준과 소득도 점차 높아져 갔다.
1970년 11월에 서울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라 암울한 노동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 지식인, 종교계 등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박정희 정부는 노동자의 노동 3권을 크게 제한하여 노동 운동을 탄압하였다. 1979년 야당(신민당) 당사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YH 무역 여성 노동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1987년 최저 임금을 결정하는 최저 임금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91년 정부는 국제 노동 기구(ILO)에 가입하여 국제 수준의 노동 규칙을 따르고자 하였다.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창립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국제 통화 기금(IMF)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노동자의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이나 노사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광복 이후 미국식 교육 제도의 영향으로 6⋅3⋅3 학제가 도입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 교육 헌장을 제정하여 학생들에게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1969년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를 시행하였다.
1974년 정부는 고교 평준화 제도를 시행하였다.
1981년 정부는 과외 전면 금지를 시행하여 높은 교육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자 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언론 탄압을 강화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경향신문을 폐간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언론계에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이 확산되자 유신 체제는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하여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하는 광고 탄압을 자행하였다.
전두환 정부의 문화공보부는 언론사 기사 통제를 위해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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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합작 운동 |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미군정도 한국인의 지지를 얻고 소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좌우 합작 위원회를 지원하였다.
좌우 합작 위원회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벌 등에 대한 좌우익의 의견을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미 군정은 이 원칙을 근거로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좌우 합작 7원칙 중 신탁 통치, 토지 개혁, 친일파 처벌 문제 등에서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충돌하였다.
그러다 여운형이 한치근에 의해 암살되면서 좌우 합작 운동은 중단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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