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2 3월 모의고사 한국사 15번 기출 해설

문제

15. 밑줄 친 ‘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이 시기에는 많은 것이 배급이었다. 쌀 배급은 하루에 1인당 2홉 5작이었는데, 쌀로 모두 주는 것이 아니라 콩깻묵도 섞어 주었다. 콩깻묵은 콩기름을 짜고 남은 부산물인데, 이것을 콩죽처럼 쑤어 먹었다. …(중략)… 일제가 중일 전쟁 이후 전시 동원 체제를 강화하던 이 시기에 한국인에 대한 징병령이 공포되었다. 나는 청주 ○○국민학교에서 징병 검사를 받았다. 징병 대상자라고 하니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였다.

① 호포제가 실시되었다.

② 무신 정변이 발생하였다.

③ 교육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④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되었다.

⑤ 화랑도가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징병제 등을 시행하였다.

또한 일제는 농가마다 목표량을 정해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① 호포제가 실시되었다.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기 호포제를 실시하여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무신 정변이 발생하였다.

무신 정변은 고려 시대에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교육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교육입국 조서는 제2차 갑오개혁을 통해 반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황국 신민화 정책을 통해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화랑도가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신라 진흥왕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일제의
국가 총동원법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 인적 수탈
    • 군사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제는 1943년에 학도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학생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1938년 지원병제, 1943년 학도 지원병제, 1944년 징병제 시행.

 

    • 노동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9년 국민 징용령,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 시행.

 

    • 일본군 위안부

일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삶을 강요하였다.

 

  • 물적 수탈
    • 공출 제도

일제는 놋그릇, 놋대야, 수저, 농기구, 교회와 사찰의 종 등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제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 산미 증식 계획 재시행

일제는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산미 증식 계획을 다시 시행하였다.

 

    • 식량 배급제

일제는 농가마다 목표량을 정해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 1937년(중일전쟁) ~ 1945년

 

  • 배경

192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노동력과 자원은 일제에게 보다 철저히 수탈당하였다.

그 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만주사변), 더 나아가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는 식민 정책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탄압하였고, 모든 방면에 걸쳐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 병참 기지화 정책
    • 조선 공업화 정책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 남면 북양 정책

일제는 일본에 필요한 공업 제품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면화의 재배와 면양의 사육을 시도하는, 이른바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였다.

 

  • 국가 총동원법(1938년)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 황국 신민화 정책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1941년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 제3차 조선 교육령(1938년)

일제는 제3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선택 과목)하여,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 제4차 조선 교육령(1943년)

일제는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 언론 폐간

1940년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을 폐간하였다.

 

  • 일상생활·사상 통제

1930년대부터 일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사상까지 통제하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중일전쟁 후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침략 전쟁에서 한국인의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조선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의 가장 하부에는 애국반을 조직하였고, 반상회를 통해 일본어 사용, 전쟁을 위한 애국 저금 등의 정책을 홍보하였다.

1940년 초 일제가 강점기 막바지에 여성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몸뻬를 고안해 냈다.

1936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은 <치안 유지법> 위반자 중 집행 유예, 형 집행 종료 또는 가출옥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 보호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1941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이에 더 나아가서 <치안 유지법>을 위반하여 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는 자를 그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검경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자의적으로 계속하여 구금하거나 일정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반인권적 조치였다.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안동 김씨 축출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비변사 기능 축소·폐지 –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의정부와 삼군부 –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하여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경복궁 중건 –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원납전 –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당백전 –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서원 철폐 –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호포제 –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사창제 –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고려
무신정권기
무신정변

  • 무신정변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충헌

  • 최씨 정권의 성립 –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 최충헌 –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최우

  •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 사병으로 조직된 도방과 함께 삼별초가 군사적 기반

 

농민과 천민의 봉기

  • 조위총의 난 –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망이·망소이의 난 –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제2차
갑오개혁
  • 배경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 제2차 김홍집 내각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내각제 도입
      • 8아문을 7부로 고쳐 내각을 편성
      • 지방 행정을 8도를 23부로 개편
      • 재판소 설치
      • 지방관 권한 축소(사법권과 군사권을 배제, 행정권만 행사)
    • 사회
      •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
    • 군사
      • 훈련대와 시위대 창설

 

  • 중단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신라
진흥왕
  • 활발한 정복 활동을 전개하면서 삼국 간의 항쟁을 주도
  •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
  • 한강 유역 장악 후,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
  • 새로 차지한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녕비)를 세움
  •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
  • 거칠부가 역사서 <국사>를 편찬
  • 황룡사 건립
  • 자신을 황제에 비겨 ‘태왕’ 또는 ‘짐’이라 하였으며, ‘개국’ 등의 연호를 사용하여 자주 의식을 나타냄

신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창녕 진흥왕 순수비(또는 척경비)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3월 고2 학평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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