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7월 모의고사 고3 한국사 20번 해설 – 6.25 전쟁

20번 문제

20. 밑줄 친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지도로 보는 한국사]

지도는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이 전쟁 중 전개 된 인천 상륙 작전에서 국군과 유엔군의 상륙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오전 만조에 녹색해안 상륙에 성공하여 인천항 진입로를 확보하였다. 오후 만조에는 적색해안과 청색해안에 동시 상륙하였는데, 적색해안 상륙에는 국군도 함께 참여하였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과 서울을 수복하여 이 전쟁의 전세를 역전하는 데 성공하였다.

① 중국군이 참전하였다.

② 아관 파천이 단행되었다.

③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였다.

④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었다.

⑤ 통일 주체 국민 회의가 개최되었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① 중국군이 참전하였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 후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으며, 이 가운데 흥남 철수 작전도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아관 파천이 단행되었다.

1896년,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였다.

1920년 간도 참변 이후 소⋅만 국경에 위치한 밀산부에 집결한 독립군은 서일을 총재로 하는 대한 독립 군단으로 재정비한 후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독립군은 그 곳에서 한국인의 민족 운동을 지원한다고 하는 적색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하였고, 적색군을 도와 내전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적색군은 내전에 승리한 후 독립군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려 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공격함으로써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야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었다.

정미의병 이후, 1908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이 편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통일 주체 국민 회의가 개최되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부는 남북 통일을 위한 사회 질서 안정을 명분으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였다.

그리고 비상 국무 회의에서 만들어진 유신 헌법은 국민 투표를 통해 확정되었다. 유신헌법은 국민투표에서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확정되었다.

대통령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간선 선거로 선출하도록 하였다.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제8대 대통령에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7월 고3 학평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