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6월 모의고사 한국사 18번 해설 – 한일 국교 정상화

18번 문제

18. 다음 사건이 일어난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① 균역법이 시행되었다.

②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③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④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었다.

⑤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추진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박정희 정부는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 마련 등을 이유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였다.

1964년 한·일 국교 회담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정당한 배상 등에 대한 요구보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대일 굴욕 외교로 평가하고 범국민적인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한·일 협정(한일 기본 조약)을 체결하였다.

 

① 균역법이 시행되었다.

조선 정조 때 균역법이 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고려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후 1964년부터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를 실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추진되었다.

1904년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1905년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화폐였던 백동화와 엽전을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하는 일본 화폐인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게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 배경

박정희 정부는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 마련 등을 이유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였다.

 

  • 김종필·오히라 회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일본 오히라 외무대신이 만나서 일본이 한국에 경제 협력 자금이라는 명목의 지원금과 유·무상 차관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 6·3 시위(1964년)

한·일 국교 회담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정당한 배상 등에 대한 요구보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대일 굴욕 외교로 평가하고 범국민적인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휴교령과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다.

 

  • 한·일 협정

1965년 박정희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한·일 협정(한일 기본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서는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 제1차,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이 처음 수립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7개년 계획이었다.

이것이 장면 내각에 의해서 5개년 계획안으로 수정되었으며, 5⋅16 군사 정변 후 재수정되어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는 이를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겨지게 되었다.

 

    • 내용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64년 ~ 1966년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67년 ~ 1971년

제1차,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1971년)에서는 노동 집약적 경공업을 육성하고 수출을 늘리는 데 힘썼다.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시기 경부 고속 도로와 포항 제철소 건설을 시작하는 등 사회 간접 자본도 확충하였다.

1970년 경남 마산에 수출 자유 지역이 지정되어 외자를 유치하였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의 송금,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 특수로 마련한 자금이 큰 역할을 하였다.

 

  • 제3차,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72년 ~ 1976년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77년 ~ 1981년

1970년 무렵에는 갚아야 할 차관의 원금과 이자가 늘어나고 경공업 제품의 수출이 차츰 벽에 부딪히면서, 그 동안 이룩해 온 경제 성장은 위기를 맞아 정책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 제3차,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중화학 공업을 집중 육성하였다.

정부는 철강, 화학, 비철 금속, 기계, 조선, 전자 등 중화학 공업을 집중 육성하였으며, 울산과 거제 등지에 대규모 조선소를 설립하였다

1973년에 포항 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되었다.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이 발생하였지만, 중동 건설 사업에서 외화를 벌어들여 극복할 수 있었다.

1973년 전북 익산(이리)에 수출 자유 지역이 지정되어 외자를 유치하였다.

1977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1978년 제2차 석유 파동으로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 투자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고 기업 부담이 늘었다.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실업률이 증가하였으며 경제 성장률도 감소하였다.

 

  • 문제점 및 한계

외채가 빠르게 증가하여 한국 경제가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정부 주도로 추진된 경제 개발의 핵심은 수출 증대였다. 이를 위한 정부의 대기업 육성 정책으로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경 유착 등의 부정부패가 나타났다.

또한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그리고 저임금·저곡가 정책으로 수출품의 가격을 낮췄는데, 이는 빈부 격차와 도시·농촌 간의 소득 격차로 이어져 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 행정 수도 건설 계획

박정희 정부는 수도권 인구 과밀화 억제 등을 내세우며 행정 수도의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충남 공주시 장기면을 중심으로 연기군 일부까지 건설 대상 지역에 포함되었다.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1974년 8월 15일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 정치
  • 이인좌의 난 발생
  • 탕평 정치 실시. 탕평책.

탕평비

  • 탕평비 설치 – 1742년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탕평책을 펼쳐 붕당의 다툼을 없애려 한 영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
  • 준천사를 설치하여 청계천을 준설함으로서 청계천의 범람 피해와 하수처리 문제를 해결
  • 산림 존재 불인정
  • 서원 대폭 정리
  • 이조 전랑 권한 약화
  • 균역법 시행
  • ‘속대전’, ‘속오례의’, ‘동국문헌비고’ 편찬
  • 신문고 부활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 철령 이북의 땅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김영삼 정부
  • 문민정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김영삼이 당선되면서 5·16 군사 정변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 금융 실명제

1993년 김영삼 정부는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여 탈세와 부정부패를 막고자 하였다.

 

  • 지방 자치제 실시

김영삼 정부에서는 지역 주민이 자치 단체장까지 직접 선출하는 지방 자치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였다.

 

  •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진행하여 1995년 조선 총독부 청사를 해체하였다.

 

  • 삼풍 백화점 붕괴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 OECD 가입

김영삼 정부는 199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 IMF 외환 위기

김영삼 정부는 임기 말인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해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규모 해고 사태가 발생하였다.

 

  •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과 세계 무역 기구(WTO)

1986년에는 자유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우루과이에서 다자간 무역 협상 개시를 위한 각료 선언(우루과이 라운드)을 발표하였다.

이에 정부는 미국 등의 개방 압력과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라 시장과 자본의 전면적인 개방을 서둘렀고, 그 결과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금융 자본 등이 국내에 진출하였다.

1994년에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과 다음 해에 세계 무역 기구(WTO)가 출범하자,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국제 무역 질서가 수립되었다.

한국 정부는 1995년 1월 1일부터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 초등학교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 하나회 청산

군내 비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청산했다.

 

  • 거창 사건 특별법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일본의
화폐 정리 사업과
금융 장악

  • 배경

러일 전쟁 중 일제는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대한 제국에 메가타를 재정 고문으로 파견하였다.

 

  • 화폐 정리 사업(1905년)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화폐였던 백동화와 엽전을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하는 일본 화폐인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게 했다.

백동화의 품질에 따라 갑, 을, 병 3등급으로 구분하여 교환해 줬는데, ‘병’ 등급에 해당하는 백동화는 교환이 거부되어 조선 상인들이 타격을 입었다.

 

  • 일본 제일은행

화폐 정리 사업 과정에서, 일본의 제일은행이 중앙 은행 기능을 맡도록 하여 대한제국의 금융 정책을 지배하게 되었다.

 

  • 일본의 차관 제공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대한 제국의 화폐 정리와 시설 개선의 명목으로 차관을 강요하였다.

일본의 차관 제공 정책은 대한 제국을 재정적으로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7학년도(2026) 6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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