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9월 모의고사 한국사 1번 해설

1번 문제

1. (가)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방곡령이 선포되었다.

②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다.

③ 비파형 동검이 제작되었다.

④ 교육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⑤ 석굴암 본존 불상이 만들어졌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청동기 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① 방곡령이 선포되었다.

1883년 조선은 일본과 체결한 조일 통상 장정에서 미곡 유출을 제한하는 방곡령 시행을 규정하였다.

1889년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흉년으로 인해 방곡령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조⋅일 통상 장정의 규정을 구실로 통고받은 날부터 수출 금지 일자까지 1개월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방곡령의 취소를 요구하였다.

결국 조선은 방곡령을 철회하였으며, 일본 상인들은 방곡령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였고,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다.

고려 시대 김부식에 의해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비파형 동검이 제작되었다.

청동기 시대에 비파형 동검이 제작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교육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1894년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교육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석굴암 본존 불상이 만들어졌다.

통일 신라 시대 석굴암 본존 불상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구석기 시대
  • 약 70만 년 전
  • 뗀석기 –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찍개 등
  • 동굴, 바위 그늘, 강가 등에서 막집 짓고 거주
  • 무리를 이루어 큰 사냥감을 찾아다니며 생활
  • 경기도 연천 전곡리, 충남 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유적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신석기 시대
  • 기원전 8000년경
  • 간석기, 빗살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 가락바퀴, 뼈바늘, 갈판과 갈돌
  • 농경과 목축 시작
  • 움집 생활
  • 정착 생활
  • 평등 사회
  •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 서울 암사동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부산 동삼동 유적

빗살무늬 토기

가락바퀴

뼈바늘

갈판과 갈돌

움집 터

서울 암사동 유적

청동기 시대
  •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 청동기 – 비파형 동검, 거친무늬 거울, 거푸집
  • 청동 방울 등을 의례 도구로 사용
  • 청동제 농기구는 제작되지 않음
  •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부여 송국리)
  • 고인돌 축조
  •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 발생
  • 저습지 등에서 벼농사가 시작
  • 목책과 환호 등 방어 시설
  • 평북 의주 미송리, 충남 부여 송국리

반달 돌칼

비파형 동검

거푸집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부여 송국리)

고인돌

철기 시대
  • 기원전 5세기경
  • 세형 동검, 잔무늬 거울
  • 쟁기,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와 철제 무기
  • 따비와 괭이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음
  •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 붓, 한자 사용
  •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

세형 동검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다호리 붓, 오수전

방곡령

  • 배경

개항 이후, 일본 상인에 의한 곡물의 일본 유출이 늘어나고, 흉년이 들면서 곡물 가격의 폭등 현상이 나타났다.

 

  • 방곡령

1889년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흉년으로 인해 방곡령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조⋅일 통상 장정의 규정을 구실로 통고받은 날부터 수출 금지 일자까지 1개월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방곡령의 취소를 요구하였다.

방곡령

흉년 등으로 쌀이 부족해질 경우, 지방관이 쌀의 수출을 금지하던 명령으로 조⋅일 통상 장정에는 1개월 이전에 일본 상인에게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 결과

결국 조선은 방곡령을 철회하였으며, 일본 상인들은 방곡령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였고,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고려
역사서 편찬
  • 7대 실록(1034년)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을 편찬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을 현종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덕종 때 완성하였다.

  • 삼국사기(1145년)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계승 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 해동고승전(1215년)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은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 동명왕편(1193년)

고려 명종 때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 삼국유사(1281년)

충렬왕 때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는 등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 제왕운기(1287년)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내었다.

  • 사략(1357년)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하였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제2차
갑오개혁
  • 배경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 제2차 김홍집 내각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내각제 도입
      • 8아문을 7부로 고쳐 내각을 편성
      • 지방 행정을 8도를 23부로 개편
      • 재판소 설치
      • 지방관 권한 축소(사법권과 군사권을 배제, 행정권만 행사)
    • 사회
      • 교육 입국 조서 반포
    • 군사
      • 훈련대와 시위대 창설

 

  • 중단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남북국의
불상 조각과 공예
  • 통일 신라
    • 불상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와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들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 조각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보살상들이다.

석굴암 본존불

 

    • 공예

통일 신라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을 많이 만들었다. 불국사 석등과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단아하면서도 균형잡힌 걸작으로 꼽힌다.

통일 후에는 상원사 동종, 성덕 대왕 신종 등 범종이 많이 주조되었다. 특히, 성덕 대왕 신종은 맑고 장중한 소리와 경쾌하고 아름다운 비천상으로 유명하다.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범종이다.

성덕 대왕 신종

성덕 대왕 신종 무늬

법주사 쌍사자 석등

상원사 동종

고구려의 금동 장식

무령왕릉 출토 금동 신발

 

  • 발해
    • 불상

발해에서는 불교가 장려됨에 따라 많은 불상이 제작되었다.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도 발굴되었다.

 

    • 공예

상경에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석등은 발해 석조 미술의 대표로 꼽힌다.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연꽃무늬 수막새를 제작했다.

말갈계 토기를 사용했다.

돌사자상

석등

발해 이불병좌상

연꽃무늬 수막새

 

기출 문제 키워드

2027학년도(2026)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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