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6번 해설 – 조선 혁명군

16번 문제

16.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부는 항일 무장 투쟁을 효율적으로 전개할 목적으로 1920년대 후반부터 통합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남만주의 국민부와 북만주의 혁신 의회로 통합되었다. 국민부는 조선 혁명당을 조직하고 그 산하에 무장 부대인 (가)를 결성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①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② 조선 혁명 선언을 발표하였다.

③ 105인 사건으로 시련을 겪었다.

④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⑤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합동 작전을 전개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양세봉 등이 중심이 된 국민부는 조선 혁명당을 결성하고, 그 아래에 조선 혁명군을 조직하였다.

 

①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 이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1908년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을 편성하였다.

그 중 300명의 선발대는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으나, 일본군의 선제 공격을 받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조선 혁명 선언을 발표하였다.

1919년 11월 신흥 무관 학교 출신인 김원봉, 윤세주 등은 만주 지린성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의열단원들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 직접 혁명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105인 사건으로 시련을 겪었다.

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합동 작전을 전개하였다.

1943년 영국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광복군은 미얀마·인도 전선에 참가하여,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포로 심문, 정보 수집, 선전 활동 등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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