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2번 해설 – 국채 보상 운동

12번 문제

12. 밑줄 친‘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한국사 신문

나랏빚 청산을 우리 손으로

대구 광문사에서 서상돈이 담배를 끊은 돈으로 성금을 모아 1,300만 원의 나랏빚을 갚자고 하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찬성하였다. 서상돈은 의연금 800원, 김광제는 3개월치 담뱃값 60전과 의연금 10원을 함께 내놓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의연금 대열에 참여하였다. 앞으로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① 독립 협회가 주도하였다.

② 청군의 진압으로 실패하였다.

③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④ 대한 제국의 국채를 갚자는 취지로 전개되었다.

⑤ 통신사가 에도 막부에 파견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05년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그들의 식민지 시설을 갖추기 위하여 시설 개선 등의 명목을 내세워 대한 제국으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들여 오게 하였는데, 1907년까지 들여 온 차관 총액은 대한 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1300만 원에 달하였다.

일제의 차관 제공에 의한 경제적 예속화 정책에 저항하여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다.

1907년 서상돈, 김광제의 제안으로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① 독립 협회가 주도하였다.

1897년 러시아가 저탄소(석탄 저장소) 설치를 위해 절영도의 조차를 요구하자,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저탄소 철거까지 주장하여 마침내 러시아의 요구를 좌절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청군의 진압으로 실패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1994년 갑신정변은 청군의 진압으로 실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1876년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대한 제국의 국채를 갚자는 취지로 전개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통신사가 에도 막부에 파견되는 계기가 되었다.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8학년도(2017)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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